▶ 유가인상으로 보호지역 원유개발안 다시 고개들어
요즘, 미국인들은 천장부지로 치솟은 자동차 기름값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름값이 조만간 떨어질 전망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원유개발 문제를 놓고 워싱턴 정가는 물론, 환경보존론자들과 석유업계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불러 일으키는 지역이 있다.
문제의 지역은 바로 북극해와 알래스카 사이에 펼쳐져 있는 국립 북극야생보호지역(ANWR)이다.
이곳은 나무가 전혀 자리지 않고, 모기들만 들끓는 툰드라 냉습지대다. 얼핏 보면,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이 지역을 놓고, 지난 25년간 개발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왜 이 곳이 논쟁의 불씨가 되는지 금새 이해할 수 있다.
이곳은 13만여 마리의 알래스카 순록들이 겨울을 나는 세계최대의 순록서식지대다. 여름동안 녹지대에서 살찐 순록들이 장장 400마일을 여행하여, 이곳까지 와서 겨울을 나며 새끼를 친다.
순록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바로 이 일대 지하에는 32억 배럴에서 최고 160억 배럴까지의 막대한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고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석유업계와 그 지지자들은 이 야생보호지역에 시추공을 뚫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석유개발 찬성론자인 알래스카주 출신 하원의원 돈 영은 이렇게 주장한다.
"요즘처럼 기름값이 높을 때, 수십억 배럴의 원유를 지하에 사장시켜 놓아야 된다고 말하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미 연방의회가 이곳을 국립 북극야생보존지대, 즉 ANWR로 지정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었다.
이 법안에 따라서, 전체 1,900만 에이커의 툰드라 지대 중 800만 에이커가 ‘야생 보존지대’로 지정되었다.
일단, 국립야생 보존지대로 지정되면, 거기서는 도로건설을 비롯, 광산채굴, 벌목, 원유개발 등 일체의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런데, 140만마일에 달하는 툰드라 해안평지 중 보호구역으로 걸치는 해안은 8%에 불과하다. 석유개발업계가 노리는 곳이 바로, 나머지 해안평지 일대이다.
1995년,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의회가 주도한 추경예산을 비토했는데, 그 추경예산의 상당부분은 ANWR 해안평지 석유개발 이권으로 충당되는 내용이었다. 당시,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주도로 연방정부가 3일간 폐쇄된 이면에는 이같은 곡절이 숨어 있었다.
최근에 다시 일고있는 ANWR 개발논쟁은 제 2라운드인 셈이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전에 아예, 해안평지 일대를 국립유적지로 지정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럴 경우,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큰 골탕을 먹게 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의 뒤를 이어, ANWR 개발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얼마 전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야생보존지대의 개발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민감한 생태계에 치명적인 파괴를 초래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이 개발되면, 일차적인 피해자는 순록들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새끼를 밴 순록들은 인간, 기계소음, 차량 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럴 경우, 순록들은 세계최대 규모의 야생번식지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보호론자들의 주장이다. 겨울동안, 순록들이 약탈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며 새끼들을 기르는 세계최대의 순록서식지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석유개발이 "순록의 바이아그라"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색다른 주장을 한다. 이들은 그 근거로, 지난 70년대 석유개발이 시작됐던 프루호 베이 일대에서, 그후 순록들이 3배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들은 또, 석유업계가 순록보호에 최선의 배려를 다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순록들이 통과하는 지점에서는 파이프라인을 더 높게 설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존론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만일, 해안평지와 나머지 보존지대를 격리시키는 본격적인 석유시추가 진행될 경우, 전체 생태계의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알래스카 대학 생물학자 데이빗 클라인 교수는 주장한다.
야생보존지대 일대에는 순록 외에도, 늑대, 북극곰, 그리고 수백종의 각종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한편, 다수의 알래스카 주민들은 석유개발을 지지하는 쪽에 서 있다.
알래스카 주는 지난해 주민 일인당 1,700달러씩의 "영구기금" 수당을 지불했다. 주민들은 석유개발이 자신들에게 가져다 줄 경제적 혜택을 반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간의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알래스카의 생태계를 영구히 파괴할 수는 없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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