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화제
▶ 51세 데일 웹스터, 하루도 거르지않고 대기록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별난 사람들이 있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보디가 베이 해변에서, 25년 넘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파도타기를 해 온 데일 웹스터도 그들 중 한 명일 것이다.
파도에 관한한, 보디가 베이는 서퍼들의 디즈니랜드로 불릴만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태평양에 직접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조류가 충돌함으로써 연중 이상적인 파도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면 밑에는 각종 암초가 가시처럼 솟아 있고, 게다가 간혹 치명적인 상어들까지 출몰하는 위험한 지역이다.
이곳 해변에는 ‘서핑 위험지역, 인명구조대원 없음’이라고 적힌 간판이 붙어있다.
그러니, 이 수역에서 노는 것은 바다표범과 물개들 뿐이다. 그리고, 데일 웹스터가 거기에 있다.
웹스터는 매일, 거의 두 시간씩 이곳에서 서핑을 한다. 때로는, 청바지 차림의 해변관광객들이 무심코 웹스터의 서핑 장면을 구경하지만, 웹스터에게는 그것이 또 한 번의 서핑에 불과하다.
그는 최근, 정확하게 9,067일 연속서핑 기록을 작성했다.
51세의 웹스터는 1975년 9월 2일부터 시작한 서핑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온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서핑을 시작한 사연은 이렇다.
한번은 1주일간 15피트 높이의 파도가 계속 밀어닥쳤다. 그는 7일간 계속해서 서핑을 한 다음 "앞으로도, 날마다 서핑을 계속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날 이후, 웨스터는 25년이 넘도록 자신의 다짐을 계속 이어왔다.
그의 당면목표는 28년 주기의 월력사이클 동안 서핑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1976년에 사용했던 오리지널 조수 챠트북을, 2004년 2월에 재사용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것이다.
그가 이 사이클을 고집하는 이유는 또 있다.
1976년은 윤년으로서, 2월에 일요일이 다섯 번 이었다. 그는 당시, 다섯 번의 일요일마다 서핑을 하고 그때마다 한 개씩, 다섯 개의 발물갈퀴를 훈장처럼 벽에 걸어놓았다. 그런데, 오는 2004년 윤년에, 다섯 개를 마져 채워서 도합 열 개를 만들어야 서핑행진이 완성된다고 믿는 것이다.
"서핑 연속기록에 관한한 웹스터는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다"
서핑관련 잡지의 전편집장 드루 캠피온은 말한다.
"웹스터 외에는, 월력사이클 동안 서핑을 계속하려고 흉내낸 사람조차 없다"
서핑계에서 웹스터는 본명보다는 ‘파도의 대가’라는 뜻의 ‘웨이브-스터’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웹스터는 서핑기록을 이어오는 동안, 매년 9월 2일에 낡은 서핑복을 버리고 새것을 장만하곤 했다. 그러기를 14년, 마침내 서핑복 회사는 웹스터에게 향후 서핑복을 무료로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그 회사는 자신들의 제품 선전문에 "파도 1만개 서핑보증"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웹스터가 제품의 내구성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웹스터는 어린시절, 샌디에고에서 서핑을 하면서 자라났다.
그는 1973년 샌프란시스코 북쪽 보디가 베이로 이주했는데, 이곳은 유명한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대표작 "새"의 대부분을 촬영한 장소다. 이곳에서 웹스터는 태평양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한 초등학교의 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 10년 동안, 웹스터는 자신의 기록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에게 기록표에 증인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게중에는 다른 서퍼들, 해변 관광객들, 공원 순찰원들도 포함되었다. 또, 1995년까지는 그의 아내 카예가 기본적으로 일일 증인이 되고, 관련 일지까지 작성했다.
때로는, 폭풍과 짙은 안개 때문에 증인 구하기가 어려운 날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서명 요청을 수상하게 여긴 나머지, 서명을 거부하기도 했다.
웹스터가 스스로 정한 일일기록의 기준치는, 파도의 높이에 상관없이 최소한 3개의 파도를 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개 2시간에 걸쳐 20개의 파도를 탄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날씨가 너무 험하거나, 반대로 파도가 아예 없는 날도 있다.
또한, 몸에 상처가 있거나 귀가 아플때도 큰 곤란을 겪는다. 한번은 신장결석으로 인해,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계속했다. 서핑보드는 아내가 운반해 주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서핑을 끝낸 후, 엉금엉금 기어나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어려움은 그뿐이 아니었다.
웹스터는 기록을 이어가는 동안, 경제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차도 없었기 때문에, 아내와 친구들이 그를 해변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또, 기록경신을 위해서 수시로 직장도 바꿔야만 했다.
마음놓고 휴가를 가기도 힘들었다. 특히, 유타에 거주하는 친척집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유타주는 바다가 전혀 없는 완전내륙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에 가든지, 반드시 서핑부터 먼저하고 다른 일을 했다.
한번은 오후에 하와이의 빅 아일랜드에 도착했는데, 해안에 파도가 전혀 일지 않았다. 그는 부랴부랴 차를 몰고 섬의 동쪽해안으로 달려간 다음, 일몰 직전에 겨우 서핑을 했다.
"나는 서핑을 하느라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했다. 노년에 내 기억 속에는 나만의 디즈니랜드에서, 바다표범과 물개, 그리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30인치의 연어들을 보며 서핑한 것 밖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웹스터는 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