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LA타임즈에는 ‘진화론 캔저스에서 지원자를 얻다’라는 제하에 브루스 와이앗 신임 캔저스 주교육위원이 진화론을 무시하는 주 과학시험규범을 고쳐 놓겠다고 약속했다는 작은 기사를 AP발로 게재했다. 이 기사는 이어 오는 11월 선거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업무를 시작할 새 주교육위원들의 대부분이 온건파 공화당원들과 민주당원들로 구성될 것이 예상돼 주 교육위가 1년전 채택한 보수적인 과학시험규범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년전 캔저스 주교육위는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적 원리가 아니라고 규정, 미국내 학교에서의 과학교육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종교적 보수파들에게 승리를 안겨줬었다. 당시 이같은 결정은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로 등장, 온갖 신문과 잡지가 사설과 칼럼으로 다뤘었는데 대부분이 주교육위의 결정을 우행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주교육위의 결정은 학교가 개별적으로 진화론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주에서 실시하는 시험과목에서는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정이 나오자 진보파들은 “생활과학과 생물에서 진화론을 제거함으로써 학생들은 근본적으로 불구자가 되게 됐다”고 강력한 반대의견을 표명했었다. 그리고 캔저스의 6개주립대에서는 교육위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 직전 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진화론교육이 학생들의 신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킨다는 주장은 1925년에 있었던 스코프스의 재판때나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다”고 진화론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주교육에서 진화론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알라바마, 아리조나, 조지아 등 미 남부 주들과 네브라스카와 아이오와 등 미 심장부 주 등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돼오다 마침내 캔저스에서 결실을 보게됐던 것. 그런데 이들 주들이 진화론에 반기를 들게된 주 원인은 10여년전 연방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강요될 수없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창조론을 못 가르친다면 진화론도 못 가르치게 하겠다는 주장이다.
과학과 신앙의 대결은 상기 캔저스 주립대들의 편지에 적혀있는 스코프스 재판을극화한 영화 ‘바람을 상속하리’(Inherit the Wind·60)에서 진지하고 흥미진진하니 묘사된 바있다. 명장 스탠리 크레이머가 만든 이 영화는 1925년 주법을 어기고 교실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다 기소된 테네시의 소읍 데이톤의 교사 존 스코프스에 대한 법정공방전 실화를 그린 것인데 이 재판이 그 유명한 ‘원숭이 재판’이다.
당시 스코프스를 기소한 검사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인 윌리엄 브라이언(프레데릭 마치 분)이었고 변호사는 진보사상가인 클래런스 대로우(스펜서 트레이시)였다.
중세 종교재판 같은 이 ‘원숭이 재판’을 둘러싸고 온 마을이 나팔불고 북치며 시위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대면서 이 사건은 전 미국의 뜨거운 관심사로 부상했었다. 브라이언과 대로우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공방전 끝에 스코프스는 동네 분위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판사는 100달러의 벌금형만 내렸었다. 좋은 극본과 함께 노익장 트레이시와 마치의 타이탄의 대결같은 명연기가 눈부신 작품으로 코믹하고 깊고 심각하면서 아울러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명작이다.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냐 아니면 흙으로 빚어진 신의 피조물이냐 하는 논의는 사실과 믿음의 문제다. 과학적으로 많은 것이 증명된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따를 것이요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창조론을 따를 것이다. 이 둘을 모두 믿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나같은 불가지론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닌 만큼 둘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둘의 공존을 기피하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허위라고 깔아뭉갤 때 발생하게 된다. ‘바람을 상속하리’에서도 비판하고 있는 것은 과학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지와 편견으로 이뤄진 광신이지 창조론 자체는 아니다. 영화에서 스코프스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사람들을 위로해야지 겁이나 죽게 만들면 안된다”라고. 자기 것만을 막무가내로 주장하다 보면 인간은 짐승수준을 못 벗어나고 마는데 영화에서 아무것도 믿지않는 냉소적인 기자 혼벡(진 켈리)이 ‘원숭이 재판’을 취재하며 내뱉는 “다윈이 틀렸어. 인간은 아직도 원숭이들이야”라는 말은 모든 편견적인 인간에 대한 따끔한 경고이다.
영화는 대로우 변호사가 진화론 책과 성경을 모두 꼭 붙들고 법정을 퇴장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현자들에게는 과학과 신앙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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