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화제
▶ 노먼 베스, 시드니 장애올림픽 탁구 맹훈련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장애자 올림픽 미국탁구대표 선수 노먼 배스는 68세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그는 1961년, 메이저리그 켄사스 시티 A`s팀 투수로서 11승을 거두면서 차세대 에이스로서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만능 스포츠맨이던 그는 1964년, 풋볼팀 덴버 브롱코스에서 디펜시브 백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고질적인 류마티스성 관절염이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스포츠맨으로서의 베스의 커리어는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후, 베스는 다시한번 스포츠의 경쟁세계로 복귀했다.
68세의 베스는 2000년 시드니 퍼랠림픽 탁구종목에 미국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오는 10월 18일부터 29일 사이에 개최되는 퍼랠림픽은 장애자 체육인들을 위한 올림픽 스타일의 스포츠 제전이다.
장애자 선수들은 기동성을 기준으로 1부터 10등급으로 분류된다.
1부터 5등급까지는 휠체어를 타는 선수들이고 7부터 10등급까지는 서서 경기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베스는 7등급 선수로서, 세계 장애자 탁구랭킹 7위에 올라 있다. 그는 이번에 단식종목을 물론이고, 세계랭킹 2위인 조슈아 바텔과 함께 복식에도 출전한다.
미시간주 로렐 태생인 베스는 어려서부터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또, 그의 동생 딕도 1960년부터 69년 사이 풋볼팀 램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베스는 훗날 캘리포니아 소재 한 고등학교 풋볼팀의 올스타 쿼터백이 되기고 했고, 대학에서는 농구를 했다.
그러나, 프로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그는 선수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고질적인 육체적 장애가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나의 인생이었다. 더 이상 운동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야구글러브를 손에 끼고 잠자리에 든 적도 있었다"
베스는 당시를 회상한다.
사실, 그는 신체적 핸디캡을 갖고 메이저리그에 진입했었다.
베스는 아동기에 뇌막염을 앓으면서 일시적인 시력 및 청각상실, 그리고 신체마비를 겪은 적이 있다. 다행히, 시각과 마비증세는 회복되었으나, 두 귀의 청각은 75%와 50%밖에 복구되지 않았다.
그는 1961년 켄사스 시티 A`s팀의 우완강속구 투수로서 11승을 올렸다. 베스는 그 시즌 가운데, 두 경기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는 슬러거 로저 매리스에게 그의 27호 홈런을 맞은 맞은 경기다.
"안쪽 낮은 볼을 던졌는데, 로저가 얼마나 강하게 받아 쳤던지, 공이 경기장 담벽을 넘어서 인근 브룩클린 에버뉴에 떨어졌다"
베스는 당시를 회고한다.
한편, 매리스는 그 시즌 홈런행진을 계속하여, 결국 한시즌 61호 홈런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수립했다. 매리스의 기록은 2년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에 의해 깨진 바 있다.
두 번째 경기는 시즌종반 구단주 찰리 핀리가 특별히 요청해서 출전했다.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기 원한 핀리가, 불과 이틀전에 투구한 베스에게 등판을 요청한 것이다. 베스는 경기에 출전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핀리는 베스에게 4,000달러의 특별보너스와 신형 캐딜락 컨버티블을 주었다.
그러나, 베스의 야구인생은 61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점차 다리가 경색되고 왼쪽 어깨가 굽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첨단 검진기술이 없어서, 그는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불행히도, 그의 신체적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1961년 시즌 171이닝에서 방어율 4.69를 기록했으나, 이듬해는 75이닝에 6.09, 그 다음 해에는 불과 8이닝 동안 11.74를 기록했다. 그것으로 그의 야구인생도 끝나고 말았다.
그후, 베스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맥도널 더글라스의 컴퓨터관련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직장을 잡았다. 그는 30년간 일한 뒤 지난 94년에 은퇴했다.
한편, 베스가 탁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70년대 후반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우연히, 한 어른이 어린애와 탁구를 치면서, 상대의 나이를 고려치 않고 거칠게 치는 것을 보았다. 화가 난 베스는 그 자리에게 도전을 신청하여 승리했다. 이후, 그는 취미삼아 탁구를 계속했다. 특히, 탁구의 다양한 스피드와 스핀, 그리고 변화무쌍한 전술등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친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장애자 선수가 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베스는 스스로를 장애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장애자 선수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좀 창피했다"
베스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는 팬아메리칸 챔피언십에서 바텔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고, 올림픽 출전 자격까지 따냈다.
베스의 코치는 1988년 중국에서 귀화한 롱 릴리루스이다.
그녀는 "베스에게 아직 향상의 여지가 있지만, 이번 올림픽 금메달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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