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에겐 자신감이 넘쳐났다."
7월11일-15일, 5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기열 목사(47,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 사무국 사무총장)는“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다"며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가 깨지지 않도록 무척 조심하는 태도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정 목사는 방북 기간중 만난 북한 주민들과 노동당 인사들이“6.15선언의 성과를 파행으로 몰아넣으려는 민족안팎의 수구세력들에 파행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8월 범민족대회도 취소했다"고 전하고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에서 유연한 입장을 취한 것도 남한의 입장과 북미관계의 개선을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남측에서 나돌고 있는 김대중-김정일 양측 정상간 이면 합의설에 대해서는“민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많은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발표시기나 내용등은 민족이 처한 어려움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목사는 또 미 대선전에 대해 언급,북한은 실익차원에서 공화당 부시의 집권을 바라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기존의 시각을 부인한 뒤“북한은 매장량 340억배럴로 추정되는 북한내 유전 시추, 개발권을 미국과의 관계 개선시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정기열 목사는 누구인가
정기열 목사(47)는 80년 유학차 도미한 이래 20년 가까이 미주지역 민족민주운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인사.
특히 89년 전대협 임수경양의 참가로 화제가 된 평양축전시 처음으로 방북한 후 그동안 20여차례나 북한을 오가며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다.
최근에는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군 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약칭 전민특위) 공동 사무국 사무총장을 맡아 노근리 사건, 매향리 오폭사건등에 매달리고 있다.
정 목사는 전민특위 활동에 전념키위해 지난 6월말에는 볼티모어 인근 티모니움 연합감리교회 부목사직을 그만 두기도.
전문/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최근 북한을 다녀온 정기열 목사에게 50년만의 남북 정상의 대좌 이후 화해와 통일의 시대를 향해 용틀임하고 있는 북한의 변화상과 양 정상간 이면합의설, 그리고 수교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북미관계에 대해 그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았다.
-방북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인사들과 만났나.
전민특위 활동때문에 공식 방문했다. 조규일 집행위원장(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장)을 비롯한 북측 전민특위와 민화협의 통일 관계자들을 접촉했으며 대중들과도 만났다.
-전민특위 사업과 관련 주로 논의된 점은.
내년 6월23일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전범재판소를 뉴욕에 설치하기로 했다. 이 재판소는 특위와 국제행동센터(대표 램지 클라크 전 미 법무장관)가 공동으로 추진하게 된다.
-6.15 선언 이전과 이후 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당장 북경-평양간 항공노선이 주2회에서 2편 더 증편됐다. 기내에 들어서니 그동안 텅빈 좌석도 꽉 차있었다. 반 이상이 남쪽 사람들이었으며 서구인들도 많았다. 마치 KAL기를 탔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기내에 비치된 노동신문과 호텔의 TV, 조선중앙 라디오에서 지난 50년간 지속돼온‘남쪽 비방’이 싹 없어졌다. 미국 비판기사도 최근의 북미관계에 상응하는 변화가 눈에 띄였다.
지난 10년동안 20여차례 북한을 다녀왔는데 처음 보고듣는 변화였다.
-북한 주민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나.
호텔 식당과 길에서 만난 대중들에겐 자신감이 넘쳐났다. 길거리 인민학교 아이들도 예전보다 신나게 걸었다. 모두들 통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듯 이야기했다.
한편으론 인민과 당(노동당)쪽 사람들 모두 6.15 선언은 ‘반세기만의 민족사의 통일 계기인 만큼 이번 회담의 성과를 파행으로 몰아넣으려는 민족 안팎의 반통일, 수구세력들에 빌미를 줘선 안되겠다’는 분위기였다. 8월 범민족대회를 하지않기로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남측과 국제사회에서는 왜 북한이 갑자기 문을 열었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북한은 닫힌 사회가 아니였다. 나름대로 제3세계와의 교류등 국제관계란 게 있어왔다. 폐쇄사회란 말은 서방식, 미국식 관점일 뿐이다. 북은 60년대부터 미국과 대화를 시도해왔으나 미국은 상대를 안해줬다. 결국 북한의 무시못할 만큼의 군사력이 미국을 94년 제네바회담 같은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냈다.
즉 개방이 아니다. 미국 자신이 북과 대화를 모색하려는 정치경제군사적 틀의 변화가 이번 대화를 성사시킨 것이다. 현재 북은 남과 일본, 미국과 활발히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통일은 희생을 통한 성취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손해볼 각오가 있어야한다. 북한도 스스로를 버릴 자세가 돼있는가.
북한이 경제적 시련을 겪고 이른바 깡패국가가 된 것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의 세계 패권구도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은 미국의 이익이냐, 7천만 민족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를 생각해야한다.
이틀간의 정상회담중 남과 마찬가지로 북 대중들은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충격적으로 느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있어보였다.
-6.15선언의 핵은 낮은 수준의 연방제 합의다. 남에서 논란이 되는‘낮은 수준’의 내용을 북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김일성 주석이 서거전 그 표현을 쓴 적이 있다. 80년 고려민주연방제 제안 후 남북 양측 방안을 살려….
보도대로 낮은 수준의 연방제란 두 개의 다른 정부,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교류를 현실화하고 그 다음 연방제, 연방의회를 구성하자는 뜻 아니겠는가.
-이번 회담에서 발표문이외에 연방의회 구성등 김대중-김정일 양측 정상간 이면합의된 구체적 내용이 있다는 설이 남측에서 꾸준히 나돌고 있다.
순안공항-평양간 차안 회담이나 김대통령이 예정된 판문점을 통한 육로로 돌아가지 않고 항공편으로 귀로에 오르며 시간을 벌어 정상간 만남을 연장한 점등을 볼 때 그런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이희호 여사는 백화원 초대소를 떠나 공항으로 갈 때 온통 울고갔다. 남측 수행원들도 동포애로 울고갔다한다. 양 정상이 반세기만에 만나 민족 장래를 놓고 밖으로 표현된 문건 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남측 내부의 소수정권이라는 정치적 입장이나 대미관계등 어려운 사정상 공개못하는 안타까운 측면에서 이해해야한다.
민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많은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발표시기나 내용등은 민족이 처한 안팎의 어려움을 고려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언급했지만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주한미군 철수문제에서 갑자기 한발을 뺀 의도는 무엇인가.
정치군사상 남북문제에 대해 북 관리들은 신중하면서도 말을 아꼈다. 모처럼 화합조건하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을 고려해 공동선언을 파행으로 몰고갈 빌미를 주지말자는 입장이다.
이러한 변화가 돌연한 건 아니다. 북의 이창복 중장(전 군사정전위 대표)도 주둔 목적이 바뀌고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이란 전제하에 언급을 한적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한 유연한 입장을 통해 남북과 북미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몸짓으로 보인다.
-최근 북미관계가 진전중인데 북에서 바라보는 수교 시기는.
이에 대한 북의 명확한 입장은 듣지못했다. 다만 김일성대의 한 교수는‘조속한 시일 안에 조미간 관계 변화가 올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했다.
통일전문가들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연락사무소 설치나 외교 관계 수립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94년 제네바 회담서 북미간 합의한 대로 2003년 10월전에 북미간 변화가 올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집권을 우려하고 있나.
공화당 행정부 등장에 대한 북의 우려는 없다. 돌이켜보면 민주당 정부때 대외침략이 많았다. 공화당 정부는 매파로 불리기에 군부와 입장이 같다. 대외적으로 민주당 정부처럼 군사적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줄 부담이나 필요가 없다.
부시가 등장하면 오히려 통일, 북미간 관계의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
-부시의 백악관 입성이 오히려 북미관계 개선에 유리하다는 말인가.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고전을 치뤘지만 군산복합체가 전쟁의 돈줄이었다. 공화당은 서부지역 군산복합체의, 민주당은 북동부쪽 군산복합체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부시와 체니라는 공화당 티켓의 돈줄 배경은 텍사스에 기반을 둔 석유사업이다.
북한에서는 매장량 340억배럴로 추정되는 6개의 유전이 발견됐다. 미국의 이들 석유회사들과 일본, 유럽은 지금 시추경쟁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시 석유시추, 개발권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다.
또한 대북 경제봉쇄의 부분 해제 이후 미국의 130여개 대기업들은 의회를 상대로 북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로비단체를 만들었다.
고어가 되든 부시가 되든 미 석유자본가등의 경제 이해관계가 북미관계 변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정 목사는“우리는 분단 반세기를 살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북, 반공 사고에 젖어 살아왔다"며“이번 정상회담으로 마련된 민족화합의 기운과 역사의 큰 걸음에 해외동포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겸허히 참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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