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를 환영하고 있다. 소수계에 대한 따듯한 정책적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여성 건강증진을 위한 예산 증액도 약속하고 있다. 연방정부 기관들을 폐쇄함으로써 중도 온건파를 자극하는 행위 따위는 절대 삼가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결코 화난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온통 스마일이다. 단상에 올라선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다. 라티노 어린이. 홀로서기에 성공한 어머니등. 민주당 전당대회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형제애의 도시’로 알려진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의 모습이다. 2000년 공화당 전당대회의 표어는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다. 이 새로운 모토와 함께 조지 W 부시를 대선후보로 지명한 공화당은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이처럼 달라졌을까.
"미국의 할 일은 비즈니스다"(Amercan business is business)-.
제30대 미대통령 캘빈 쿨리지가 남긴 어록이다. 쿨리지는 1920년대 ‘영원한 번영의 시대’에 공화당 전성기를 연 대통령으로, 이 말은 대기업 중심의 보수세력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공화당의 전통 이데올로기를 극명히 반영하고 있다.
1929년 대공황 도래를 알리는 증시 대폭락과 함께 공화당 전성기는 곧 마감되고 미국의 정치는 지각 변동의 사태를 맞는다. 그 대변화의 중심이 이른바 ‘루즈벨트 연합’이다. 대공황 극복을 위해 절실히 필요로 한 게 대대적인 정치연합세력. 이같은 판단과 함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기존의 민주당에다가 당시만 해도 정치적으로 완전 소외그룹이었던 소수계는 물론 노조, 공화당 이탈그룹 등까지 포용한 광법위한 계층을 연합 세력으로 묶는데 성공한다. 이후 미정치의 흐름은 ‘루즈벨트 연합’이 주도하게된다. 이와 함께 뉴딜정책의 산물인 ‘큰 정부’(Big Government)지향의 자유진보의 시대는 수십년간 지속, 공화당은 기나긴 휴면기를 맞는다.
선명한 전통 보수의 깃발을 들고 공화당이 롤 백을 한 시기는 1980년대. 이른바 레이건 혁명기다. 물론 그전 아이젠하워, 닉슨 행정부등 공화당 행정부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큰 정부’지향의 자유진보성 정책의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정통 보수지향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게 레이건 시대로 이른바 ‘작은 정부’가 레이건 혁명의 모토였다. 이같이 보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개혁드라이브와 함께 형성된 게 ‘레이건 연합’이다. 대기업 중심의 전통적 공화당 보수파 기득권층과 자유진보성향의 워싱턴 인시이더에게 환멸을 느낀 중도 온건파, 또 보수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특정 이해 그룹 등이 ‘레이건 연합’의 핵심 세력이다. 이 계층은 오늘날까지 공화당 지지세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90년대들어 공화당은 또 다시 광야로 내몰린다. 공화당내 우파의 지나친 독주가 주 원인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양당의 대권주자는 본래 광법위한 스펙트럼에서 분출되는 당내 각 집단의 주장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중도파성의 인물이 되는 게 상례다. 당내 각 계파의 이해를 사전에 조율, 막후에서 조정해 정강정책을 채택하고 일사불란한 모습을 과시하는 무대가 전당대회다. 대권 후보가 스팟 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해 지지율 상승을 극대로 노리는 게 전당대회의 주 목적이다.
1992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이런 점에서 실패한 전당대회다.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그룹은 부캐넌이 이끈 공화당내 우파. 공격 일변도의 우파 이데올로기가 난무한 당시의 전당대회의 모습에 식상한 중도파 유권층 상당수가 결국 공화당을 외면, 조지 부시는 재선에 실패한다.
이른바 ‘1994 증후군’도 90년대 공화당이 겪은 ‘정치적 대실패작’이다. 1994년 중간 선거에서 뉴트 깅그리치가 이끈 공화당은 압승을 거둔다. ‘성난 백인 남성유권층’의 반란의 결과다. 잇따라 터지는 클린턴 스캔들에다가, 지나친 자유진보성향의 민주당 정책에 이들은 마침내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공화당은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 한다. 이 승리를 깅그리치 공화당은 그러나 지나치게 과신한다. ‘뉴딜정책이후 60여년간의 자유진보세를 타도하고 공화당시대를 연다’- 깅그리치 공화당의 일견 오만하고, 지나친 우경화 드라이브에 백인남성 유권층까지 마침내 식상,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1996년 공화당 전당대회는 이같은 상황에서 치뤄진 전당대회로 우파의 지나친 독주 때문에 밥 돌의 출마는 실패작으로 그치게 된다. 깅그리치 공화당이 결정적인 정치적 패배를 맛보는 계기는 클린턴 대통령탄핵이 불발이 됐을 때다. ‘해도 너무한다’는 유권층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무리하게 탄핵을 몰고가다가 자충수에 몰려 뉴트 깅그리치가 오히려 물러나는 상황을 맞게된다.
조지 W 부시가 내건 ‘온정적 보수주의’는 다름이 아니다. 깅그리치 공화당이 가져온 ‘1994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는 표현이다. 온정적 보수주의가 노리는 것은 바로 ‘레이건 공화당 이미지’다. 낙천적이고, 포용하는 자세의 공화당으로 탈바꿈 해 과거 ‘레이건 연합’을 형성했던 지지계층은 물론 그동안 공화당이 소홀히 대해온 소수계, 여성등에 까지 적극적 구애작전을 펴 중도성향의 유권층을 공화당 지지로 돌리자는 게 조지 W의 ‘온정적 보수주의’다. 전형적 공화당내 중도파인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을 러닝 메이트로 선정한 것도 이런 일관된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정적 보수주의’의 공화당이 근본에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근본은 마찬가지고 달라진 것은 단지 매너일 뿐이다. 소셜 시큐리티정책, 낙태와 교육문제 등 국내 이슈는 물론 해외정책에서도 공화당은 정통 보수의 입장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접근방법이 부드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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