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A에서 이란 영화들이 계속해 상영되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외화전문 상영관인 렘리체인 극장에서 1~2주정도 상영되거나 또는 지난해 UCLA의 다리우쉬 메르주이 시리즈 경우처럼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만 관람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란영 화는 지금 눈부시게 창조적 예술성을 빛내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상영된 이란 영화들로는 이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모센 마크말바프의 ‘순수의 순간’과 ‘침묵’, 캄샤드 쿠샨의 할리웃 흉내를 낸 졸작 ‘천국에서 살아남다’등이 있고 현재 모니카 극장(310-394-9741)에서는 사드르 아멜리의 ‘운동화를 신은 소녀’(The Girl in the Sneakers·사진)가 상영중이다.
이 영화는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부모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은 10대 소녀가 가출, 하루종일 테헤란 시내를 배회, 온갖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깥 세상에 대해 눈을 뜬다는 이야기. 많은 이란 영화들처럼 순진한 소녀의 눈을 통해 이란사회의 단면들을 관찰한 사려 깊은 작품이다.
앞으로 상영 예정인 영화들로는 마크말바프와 함께 이란 영화계의 쌍벽을 이루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날아다주리’와 모즈타바 라에이의 ‘나비의 탄생’및 타미네 밀라니의 ‘두여인’등 이 있다. 그리고 마크말바프의 딸인 사미라의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공동수상작인 ‘칠판’과 그의 데뷔작인 ‘사과’도 불원 선을 보일 예정이다.
1960년대 말 걸작 ‘암소’라는 영화로 이란 영화의 뉴웨이브를 태동시킨 뒤 키아로스타미와 마크말바프와 함께 혁명 후 이란 영화의 르네상스의 길을 닦은 메르주이는 “우리 이란 영화인들은 네트 없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서커스의 곡예사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정신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교묘히 이야기를 엮어나가야 하는 실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해외에 잘 알려진 이란 감독 치고 자기 작품이 국내서 상영금지 조치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이란은 경직된 사회다. 그래서 이런 억압적인 사회 안에서 진실과 정직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이란 감독들은 모두 우화작가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많은 이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린아이들인 것도 이같은 까닭에서다.
그러나 이란의 회교근본주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란 영화인들의 창의성을 마음껏 개발시켜 주는 촉매가 되고 있다. 1979년 혁명후 이란이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면서 그 때까지 이란 영화관을 휩쓸던 외국 영화의 수입이 전무하다시피 해지고 이 공백을 이란 영화인들이 메우면서 이란 영화는 중흥을 맞게 된다. 또 샤정권의 종말은 과거 공권력이 예술인들에 대해 지시하고 지원하고 너그럽게 봐주던 관행의 종말을 가져오면서 영화인들로 하여금 표현의 형태를 새로이 탐구하게 만들었다.
이란 영화의 첫번째 황금기가 비교적 검열이 완화됐던 1985~90년이라면 서서히 개방정책을 취하고 있는 요즘은 제2의 황금기. 외신에 따르면 지금 이란사회는 완고한 종교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문에서 창조성이 불꽃처럼 터지고 있는데 이제 나이 20세밖에 안된 사미라 마크말바프 감독은 바로 이같은 사회적 변화의 대표적 상징이라 하겠다. 사미라가 17세 때 만든 ‘사과’는 역사상 칸영화제 출품작중 최연소자의 것이었고 ‘칠판’에 대한 수상은 영화제 사상 최연소자가 받은 것이다.
이란 영화는 과거 6년간 각종 영화제서 여러 가지 상을 휩쓴 바 있다. 자파르 파나히의 ‘하얀 풍선’은 1995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키아로스타미의 ‘버찌의 맛’은 1997년 칸영화제 대상을(왜 상을 받게 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마지드 마지디의 ‘천국의 아이들’은 1999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었다. 또 올 칸영화제에서는 사미라의 작품 외에도 2편의 이란 영화 ‘술취한 말들의 시간’과 ‘조메’가 뛰어난 첫 작품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함께 받았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이란 내에서 키아로스타미는 서구 비평가들의 입맛에나 맞는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 반면 마크말바프는 팬들과 비평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 중상류층 출신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와 거리를 유지해 온 키아로스타미와 달리 근로자 계급 출신인 마크발바프는 17살 때 테러리스트로 샤정권에 저항하다 투옥돼 5년간 옥살이를 했었다. 이런 배경과 함께 키아로스타미 작품의 윤리적 정수가 깊고 탐구하는 인본주의인 반면 마크말바프의 작품은 표현주의적 수법으로 사회 문제와 서민들의 척박한 삶을 많이 다루고 있어서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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