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정상담 하면 청소년 상담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가장 많은 것은 중년 배우자의 외도다. 청소년 문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어른들 자신의 현주소부터 점검해야 할 판이다. 자기 문제로 방황하는 어른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탈선을 바로 나무랄 자격이 있겠는가.
A(40)씨는 곧 쓰러질 것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40대 초반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면서 아내가 정신병이라 가정생활이 힘들다고 호소하며 이를 핑계로 매일 같이 만난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님을 남편에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들은 흔히 아내의 질병을 하소연해 다른 여자로부터 연민의 사랑을 기대한다.
B(45)씨도 남편의 부정 때문에 전화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가깝게 믿었던 후배와 남편이 불륜의 관계에 빠져 가족도 사업도 잊은 채 오로지 여자에 미쳐 날뛰니 갈라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C(51)씨는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의 부정을 발견하고 분노에 떨면서 전화를 했다. 너무나도 착실하고 성실했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이 핑계 저 핑계로 밤이 늦어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모든 것이 거짓말로 들통나면서 여자관계가 드러났단다. 너무나 성실했던 남편이었기에 처음부터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남편을 믿었던 자기의 불찰이 문제를 확대시켰다고 가슴을 치고 있었다.
중년의 사랑! A씨는 한 젊은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 나이에도 자신에게 첫 사랑과 같은 감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하며 다른 여자에게 깊숙이 몰입해 갔다. 그 여자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냥 행복했다.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그녀로부터 확인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활력이 솟았다. 그녀는 그가 마음을 털어놓는 유일한 상대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끌림과 집착이 커져갔다. 그녀를 만나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는 듯했다. 나이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이 솟았지만, 가정은 깨고 싶지 않았다. 대체로 중년에 나타난 남자의 바람기는 가정을 깨고 싶어하지는 않으면서 젊은 여성을 만나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몇몇 교회의 목사님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았더니 밤에 남자들이 집에 제 시간에 들어왔는지 구역별로 점검해야 할만큼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중년의 부정은 대체로 공통점을 안고 있다. 중년기는 제2의 정체성 형성기라고 한다. 원래 남성의 몸 속에는 다량의 남성 호르몬과 소량의 여성 호르몬이 있고, 여성은 그 반대다. 30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남자에게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많은 남성들이 체중 증가, 식욕 저하, 불면증, 골다공증, 근력 저하 등과 같은 증세를 호소하는데, 이런 신체적인 변화의 결과로 심리적인 측면에 예민하고 감성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 남자는 내면에 억제돼 있던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서적이며 의존적으로 변모, 눈물을 흘리고 따뜻하고 섬세한 감정이 나타나면서 친밀성의 욕구가 높아진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 역시 남성의 여성적인 변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릴 적부터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남성 신화라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어 자신에게 찾아오는 여성적인 면에 대해 심리적 괴리감을 느낀다. 바로 이 시기에 남자들의 외도가 많아지는 것이다.
30대 말까지는 직업을 선택하여 생활의 기반을 다지는 등 삶의 외형적 틀을 갖추는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한다. 그 결과 삶의 외형이 어느 정도 잡히면 앞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몰라 방향을 잃고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게 된다. 이민초기에는 오로지 살아 남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지금은 일만 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 어느 순간 돌아보면 누구를 위한 삶인지, 흘러버린 젊음에 대한 아쉬움과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 중년의 삶이다. 바로 이러한 심리적 공황이 새로운 여성과 사랑에 쉽게 빠지게 한다.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한다 싶으면 꼭 육체적 관계가 우선되지 않더라도 진한 사랑의 느낌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생명력이 다해 가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리려 몸부림친다. 가장 불안한 시기의 중년들이 불안감에서 벗어나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로맨틱한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추구하고, 현실을 다 무시하고 한 여자에게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허탈의 탈출을 도와줄 생명력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생명력이 시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는 초조함에 사로잡힐 바로 그 때 기적처럼 나타난 매력적이고 발랄한 여성에 의해 억압되었던 생명력이 뒤흔들리고 그 생명력은 신선하고 새로운 삶의 기운과 뜨거운 의욕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은 마치 20~30대 초반의 젊음과 열정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것처럼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 된다.
변화가 주는 두려움이나 허탈감을 누군가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자신에게 철이 없다거나 어린애 같다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공감하며 얘기를 들어줄 상대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간 남자들은 억세고 공격적이며 현실적으로 변한 아내를 만날 가능성이 많다.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은 밖으로 치닫게 된다. 들끓는 성욕을 못 이겨 젊은 여자를 찾는 경우보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젊은 여자가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가슴에 담긴 것들을 같이 이야기할 사람, ‘몰래 숨겨 놓은 자기만의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중년의 외로움을 달래줄 배우자들의 배려가 어느 때보다 아쉬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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