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50년만의 혈육 찾기 열기로 온통 흥분된 분위기다. 이산가족을 두고 있는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만남의 소식에 모두가 들떠있다. 사 반 세기만에 헤어진 혈육이 다시 만난다는 사실은 뉴스만 들어도 감격스럽고 가슴 뛰는 일이다.
더욱이 이번에 이산가족 명단 발표를 하자 예상치 않게 숨겨진 비화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와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북한측이 남한에 통보한 이산가족 명단의 대부분은 남한에 가족을 두고 북한으로 월북했던 사람들로 남한에 살고 있는 이들의 가족이 거의가 그 동안 가족이 월북했다는 사실을 숨겨오다 이번에 혈육을 만난다는 사실에 적극 나서면서 지난 세월 남몰래 가슴앓이를 해오던 슬픈 사연들이 노출되고 있다.
남쪽의 가족을 찾는 이들 북녘사람 대부분은 6.25를 전후해 모두 월북한 사람들로 이들 중 상당수는 이른바 의용군으로 비자발적 북행 경우도 있지만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익 이념대결과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진해서 북을 선택했던 사람들이다. 연령별로는 60-70대에 이르는 당시 10-20대 초반의 사리분별이 명철한 나이의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지난 50년간 그들이 월북자 가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가족들에 의해 대부분 사망 신고되거나, 제사까지 지내진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월북한 친형이 이번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한 미주동포는 ‘행방불명이 돼서 이미 오래 전 죽은 것으로 알고 살아 왔는데.. 꿈만 같다’며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이산가족에 얽힌 사연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같은 남한 땅 덩어리에 헤어진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살아야 했던 사실도 적지 않다. 월북한 한 가족 때문에 남쪽에 남아있는 가족이 겪은 수모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남은 가족들은 붉은 색채의 가족이라 해서 출세는 생각도 못하고 온갖 핍박을 다 받아 가족이 아니라 원수라고 해야 옳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 중에는 월북한 집안도 납북됐다고 하는 집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북한 가족의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다. 그 곳에 살지를 못하고 모르는 대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래도 가족은 어디를 가든 감시의 대상이 되어 자식 대에까지 피해를 보곤 했다. 특히 북에 갔던 사람이 간첩으로 넘어왔다 잡힌 경우는 아예 만나지도 못한다. 그 중에는 가족들이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사실도 몇 십 년이 되도록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남쪽에서 아무리 그를 달래도 전향을 하지 않아 그대로 미 전향 장기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가족이 뒤늦게 알고도 하지만 그들은 남이 알까봐 ‘쉬쉬’ 하며 만나려고 않는다.
한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 상봉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는 어느 새 늙은 아들을 보고 나서 얼마 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동생도 형이 오죽 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동생은 피해가 두려워 그 동안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화해무드가 무르익어 형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50년만에 생긴 예상 밖의 소식이다. 그 동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집안의 비밀로 여겼던 월북한 형님, ‘만나면 하고싶은 얘기도 많은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나셨을까’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런 류의 가족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 기회를 통해 이산가족간에 생긴 희비극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한 핏줄이 만나지 못한다? 이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지구상에 이런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이산가족이 있는 가정이 4만이라고 한다. 이 중 첫 회에는 2백 가정이 만나게 된다. 시간이 가면서 이런 만남은 점차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피붙이를 만나는 일인데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못 만나고 할 수는 없다. 긴 긴 세월 남몰래 눈물지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해외동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 문은 누구에게나 항시 열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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