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사람답지 못한 것은 무엇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어찌 만물 중에 으뜸인 사람을 짐승에 비할수 있을까만은 그만큼 양심과 도덕성을 상실한 사람을 비유한 말은 아닐는지.
우리는 급변하는 세태에서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일들을 자주 보며 살고 있다. 보모가 자기 인생에 방해가 된다하여 토막살인을 하는가 하면 열다섯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반인륜적인 행위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저지른 무서운 행위에 추호의 죄책감이나 뉘우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때 우리집에는 검지라는 개 한마리가 있었다. 까만털이 함초럼 한데다가 귀가 쫑긋한 예쁜 개였다. 어머니는 말 못하는 개에게 늘 말씀을 하셨다. 밥을 주면 허겁지겁 급히 먹는 검지에게 “천천히 먹어라 체하면 어쩔려구”“검지야 오늘 집 잘 지켜야 한다 알았지”
어느날 우리 가족 모두가 외갓집으로 나들이를 떠나며 대문을 잠그지 않고 닫아만 놓고 검지에게 집을 잘 지키라고 일러 놓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검지는 대문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또 어느날 어머니는 검지에게 “검지야 오늘밤부터 닭장 앞에서 꼭 자야한다. 요사이 여우와 늑대가 산에서 내려와 동네 닭을 많이 잡아간다더라”했더니 검지는 예외없이 제 임무 수행을 잘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중에 닭장은 온통 소란스럽고 어머니는 두우-- 두우-- 짐승 쫓는 소리를 치며 뛰어 나갔다. 닭장 문은 열려있고 마당 가득히 닭들이 뛰쳐나와 있었다. 등불을 켜들고 닭을 세어 보니 두 마리가 그날 저녁 잡혀갔다.
어머니는 아침에 검지에게 밥을 주면서 몹시 꾸짖었다. 네가 닭장을 지키지 않아서 여우가 닭을 물어 갔으니 그러려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눈을 아래로 깔고 시무룩히 꾸지람을 듣고 있는 검지가 불쌍해서 나는 검지를 안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학교로 갔다. 하루 종일 검지가 눈에 어른거렸다.
저녁 무렵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집 앞 개울가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나는 개울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검지가 지친 모습으로 모래위에 강아지 다섯 마리를 낳아 놓고 젖을 먹이며 누워있었다. “검지야 왜 여기 나와서 새끼를 낳았어 집에서 낳지않구” 나는 불쌍해서 검지를 어루만지며 앙앙 울었다. 검지의 표정은 담담하였다. 말 못하는 짐승의 마음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다만 제 책임을 소홀히 한 탓으로 닭이 잡혀간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검지는 낮 2시경 옆집에 사는 사촌오빠의 바지를 물고 개울가로 끄는 시늉을 해 따라가 보니 새끼를 낳아 놓고 알렸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검지가 며칠 사이로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헛간에 포대를 깔아 놓고 강아지 낳을 준비를 해 놓았는데 제 잘못의 가책 때문에 감히 집에서는 편히 새끼를 낳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개울가로 가서 검지를 달래며 집으로 데려 왔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었지만 제 잘못으로 저질러진 일로 인하여 주인이 벌한 것에 순응하는 자세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어 주었다. 하물며 사람으로서 부모나 웃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었다 하여 반성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복수심을 품고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부모들은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서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가 되라고 밤낮으로 기원한다. 그런 뒷바라지를 위하여 하루에 15시간의 노동마저도 기꺼이 하는 부모들은 얼마나 많은가.
제발 착하고 훌륭하게 자라다오 너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겠노라고 말했으리라. 얼마전 20대 청년들의 총기 살인사건에 연루된 차가 벤츠였다니 아마도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을까.
자식을 가진 부모이기에 이런 기사를 읽으며 가슴 아픈 허탈감에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를 않았다.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귀한 생명을 파리 목숨 다루듯이 여기는 천륜과 우정을 저버리는 비도덕적인 그들은 차라리 검지의 양심만도 못한 패륜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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