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집트의 왕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늘 허약하고 아팠으며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한 점성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점성가는 왕의 신하중 한 사람의 죽음을 예언했었고 정확히 그 시각에 신하는 죽었다. 왕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이 사람이 악마의 주술을 써서 그 신하를 살해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살려 두는 건 위험하다. 나한테도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왕은 점성가를 불러서 물었다. “나의 죽음에 대해 말해달라. 나는 언제 죽게 될 것 같은가?” 그 점성가는 왕의 얼굴을 보고 뭔가 위험스런 낌새를 알아채곤 무슨 도표 같은 걸 만들어 그것을 한참 연구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제가 죽은 뒤 일주일 후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자기의 의사들을 모두 불러 그 점성가를 돌보게 하였다. 최고의 음식들이 준비되고 모든 것을 갖춘 궁전이 그를 위해 새로 만들어졌다. 장안의 뛰어난 명의들이 단지 그를 돌보기 위해 모조리 불려왔다. 그리고 왕은 말했다. “그를 극진히 잘 돌봐주어라.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를 그가 죽은 지 칠일 후에…”
그 왕은 매우 오래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점성가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성가는 타고나길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왕은 점성가가 죽은지 꼭 일주일 되던 날 죽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병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진찰을 받고 검사를 해 보았지만 사실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매일 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는 뭔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남자는 자신이 뭔가를 들으면, 예컨대 텔레비전의 약품광고에서 어떤 질병 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곧바로 그 병을 앓는 것 같았다. 잡지에서 어떤 병에 관한 기사나 광고를 보면 금방 그런 증상에 감염되어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의사가 남자에게 말했다. “좀 성가시게 굴지 마세요. 나도 당신이 보는 신문·잡지·텔레비전 광고를 수없이 보지만 괜찮아요. 당신은 그런 광고를 보면 다음날 어김없이 그런 병에 걸려 찾아오지 않습니까?” 남자가 비웃는 듯 말했다.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모양이군요. 당신이 뭐 그리 대단한 현자라도 되는 줄 아슈? 이 마을에 의사가 당신 하나만 있는 게 아니요.” 남자는 그 의사를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병에 대한 광기는 여전했다.
그러다 얼마 후 남자는 죽었다. 많은 이가 그렇듯 죽기 직전 남자는 자신의 묘비에 새겨 넣을 말을 부인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그 말은 지금도 거기에 남아 있다. 묘비 위엔 대문자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내가 옳았다는 걸 이젠 모두 아시겠습니까?”
마음은 교활하다. 마음은 자기합리화의 귀재다. 마음은 항상 스스로의 옳음을 강변한다. 마음은 불행을 행복이라하고 행복을 불행이라 한다.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 모든게 다 마음의 조작인데 그 조작이란 실체를 보는 건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만 가능하다던가? 여기 마음을 초월한 곳에 관한 피카소의 얘기가 있다.
피카소의 그림 한점이 1백만 달러에 팔렸다. 그림을 산 귀부인은 그것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감정받기를 원했다. 한 미술평론가가 말했다. “이 작품은 진품이 틀림없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피카소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귀부인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비평가와 함께 피카소를 직접 찾아갔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보더니 이상한 대답을 했다. “이 그림은 진품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피카소의 애인이 놀라며 말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은 이 그림을 그렸어요. 이 비평가 선생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 그게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피카소가 말했다. “내가 이 그림을 그렸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오리지널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도 그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을 뿐이다. 오리지널은 지금 파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나에겐 오로지 첫 번째 그림이 오리지널이다. 그것은 내 존재의 침묵으로부터 탄생하였다. 나머진 누가 그렸든 사본일 뿐이다. 오리지널은 철저한 무심으로 그려졌다. 나는 내가 뭘 그리는 지도 모르고 그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마음의 산물이지만, 첫 번째의 그림은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 탄생하였다.”
교활한 마음이 사라지고 침묵의 깊은 심연과 함께 하는 그 “마음을 초월한 곳”은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우주의 자궁. 동요하는 이고우(Ego)가 차분히 가라앉은 그 본래의 진면목에서 예술혼과 깨달음이 잉태된다. 언제 머물꺼나. 그 텅빈 경지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