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은 매우 괴로운 곳이다. 우선 미국에 오는 비행기는 금연 구역이다.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오기 위해 열두 시간을 담배를 못 피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식당에서 담배를 필 수 없다.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는 즐거움을 원천적으로 봉쇄 당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건물 내에서는 금연을 하는 곳이 많다. 따라서 친구 사무실에 찾아 갔다가도 담배가 피우고 싶으면 건물 바깥에 나와서 눈치를 보면서 담배 맛을 훔쳐보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물론 미국에도 골초 애연가들이 있다. 그들도 미국의 철저한 금연운동 때문에 고통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애연가들도 다른 이익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담배 피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법적인 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그러한 법정 투쟁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캘리포니아 주민들’(Californians for Scientific Integrity)라는 거창한 이름의 단체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걸어서 소송을 제기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담배 관련 질병에 관한 연구 프로그램’(Tobacco-Related Disease Research Program)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스탠톤 글랜츠 (Stanton Glantz) 박사는 담배 관련 질병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캘리포니아 그리고 전 미국 금연가와 금연 단체의 회장이었다. 원고측은 거창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애연가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단체였다.
원고측의 주장은 첫째로 글랜츠 박사가 지난 15년 동안 자신의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 위하여 주립 대학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름과 자원을 유용했다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글랜츠 박사의 연구와 활동을 주립대학에서 지원하는 것은 담배를 피울 권리를 주장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간접적으로 금연 운동을 지원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이 경우에는 자기의 의사에 반하는 표현을 하지 않을 권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글랜츠 박사가 금연 운동과 담배 관련 질병 연구의 선봉에 서 있었고 그가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로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금전적인 그리고 행정적인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금전적인 도움은 결국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따라서 원고측의 주장대로 담배를 피울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금연 운동과 담배 관련 질병 연구를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피워야 하겠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담배는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도록 강요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랜츠 박사의 연구와 활동을 주 정부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 공금 유용이고 미국 연방 헌법 위반인가?
이 사건은 일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버렸다. 원고의 주장이 법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고등 법원도 일심 법원의 결정을 확인했다. 즉 원고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대한 소송은 기각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글랜츠 박사의 활동과 연구를 지원한 것이 공금 유용이라는 원고 측의 주장에 대해서 고등 법원은 주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타당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주 의회가 그러한 지원을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금연과 애연 문제에 관한 한 주 입법부의 입장이 분명하다. 캘리포니아 입법부는 금연과 담배의 해독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캘리포니아 건강과 안전에 관한 법률(Health and Safety Code) 104350조항에는 금연 프로그램에 관한 규정이 있고 "담배가 질병과 사망의 제일 큰 원인이 된다"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의회가 금연 활동과 연구를 지원한다는 입장은 분명하다. 그리고 담배 관련 질병 연구를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위촉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결론은 캘리포니아 주립 의과대학 교수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과 담배 관련 질병 연구를 하는 것은 캘리포니아 주의회의 명시적인 승인을 받은 사항임으로 결코 공금 유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정부가 글랜츠 박사의 금연 운동을 지원한 것이 연방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이나 믿음에 어긋나는 정부 정책에 세금으로 거둔 돈을 쓰는 것이 연방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의 결론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러한 주장이 캘리포니아의 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고등 법원은 민주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는 항상 대다수의 입장과 의견을 따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입장과는 다른 정책을 채택 수행하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정부 정책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낸 세금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가 어떤 문제에 관해서 중립적인 입장만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도 민주적인 토의과정을 거쳐서 여러 가지 입장 중에서 공공 복리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채택할 수도 있고 그러한 입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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