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말하는 소위「북남 공동성명」을 만들어 냈대서 성공적이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이 공동성명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그런 목적들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자세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북남 공동성명은 다섯 가지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는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물론 통일문제는 한국화 되지 않으면 해결이 힘들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국제화되었던, 특히 4강의 문제였던, 한반도의 힘의 균형이 갑자기 우리의 힘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3대 원칙의 하나를 부추기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의 위태로운 모험이지만 과연 통일이 자주적으로만 될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을 인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가자는 것인데 이는 곧 통일은 요원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이런 제안은 결국 남과 북이 두 개의 제도를 가지고 평화롭게 떨어져 살자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몰론 평화롭게 살수만 있다면 꼭 통일이 시급하지도 않겠지만 현재의 군비체제를 서로 유지하면서 과연 지속적인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지금 북한은 군대가 아니면 통솔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위를 내세우고 있다. 북한에서는 어디서나 군인을 볼 수 있다. 평양 중심가의 고려호텔 100미터 반경내에 150명 정도의 군인이 상주하고 있고 요소요소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군인들이 차량과 사람들을 곳곳에서 검색하고 있다. 이런 사정 하에서 과연 군축이 가능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셋째, 북과 남이 오는 8·15를 기해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한다는데 이는 실현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방문단 인원이 100명밖에 안돼 겉치레 행사에 그칠 공산도 크다. 물론 북한은 100명밖에 수용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방문단 인원을 줄여 그 여파를 극소화하고 만약 문제가 있으면 차후 교환방문을 중단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겠다. 물론 남한측 입장에서는 이번 이산가족 상호방문으로 김대통령의 선거공약이 최소한도는 실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조문의 뜻이 무엇인지 애매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북한이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전력과 석탄이다. 평양과 원산을 잇는 평원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못하고 있다. 평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에 굴이 15개정도 있는데 단 하나도 전등이 켜있지 않았다. 평양에서 동명성 왕릉으로 가는 약 30km 도로에도 터널이 둘이 있는데 거기에도 전등은 켜있지 않았다.
평양의 2백만 주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평양발전소 및 동 평양발전소는 석탄이 없어 미국이 제공한 중유에다 폐기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 섞어서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평양의 대기요염은 말이 아니다. 북한의 탄광은 거의가 물에 잠겼다. 전력이 부족하여 탄광에 스며드는 물을 수시로 탈수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북한의 동력사정을 감안, 남한이 곧 이들 물자를 수송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제원조의 대가로 남한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북한의 대남정책을 예측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체육·문화·보건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최소한도로 줄여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협력과 교류가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북한 체제유지에 악영향을 준다는 평가가 난다면 곧 중단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북과 남은 이런 합의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당국사이에 대화를 계속키로 했다. 그러나 대화가 얼마나 또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시간만이 해결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이런 공동선언을 내놓게 하는 동기가 되었고 이 선언이 곧 통일로 연결될 것이라면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북한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함으로써 북한의 경제붕괴를 막아 전운을 제거하는 것이 이 공동성명 속에 담긴 남한의 의도라면 남한 당국은 북한의 의도를 오산하는 것이 아닐지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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