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검사가 됐을 때 나의 이상은 높았다. 정의와 선을 추구함으로써 우리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겠다는 희망이 내 가슴에 달린 검사배지 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났었다. 그러나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 사회와 미국 사법제도 사이에는 깊은 문화적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내가 처음 벤추라카운티 검찰청에서 일하던 시절이다. 인정신문이 열리는 법정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런저런 혐의로 기소된 수많은 피의자들과 그 가족들은 물론 미국 사법정의가 실천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는 피해자의 가족들로 법정 내는 붐비고 있었고 변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재판전 협의나 형량 삭감을 위한 논의에 분주했다. 마치 스왑밋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판사는 피의자를 한사람 한사람 불러내 혐의를 읽어주고 유죄 인정 여부를 묻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병아리 검사였던 나는 사건 파일을 가슴에 힘주어 안은 채 내 담당 케이스가 불려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판사가 나를 쳐다보더니 "중국어 통역이 마침내 나타났군. 미스터 쳉 인정신문 받도록 데리고 나오시오" 라고 말했다. 나는 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못 잡았다. 그래서 중국어 통역이 어디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기까지 했다.
"거기 당신…, 그래 당신 말이야. 마이크 앞으로 나오시오."
그럼 나를 두고 한 말이란 말인가. 재판정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재판장님, 저 실은…"
동료검사 한 사람이 나서서 내가 신입검사라는 사실을 판사에게 알려줬다. 백발의 백인 판사의 얼굴이 핑크색으로 물들더니 마침내 새빨갛게 변했다. 판사는 내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나중에 판사석으로 나를 불러 악수를 나누며 다시 한번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런 일이 계기가 돼 이 판사와 나는 그후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됐다. 나는 그가 나를 통역으로 오해한 사실 자체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오해가 선입견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아직 미국 사법 시스템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선입견 말이다. 그 백인 판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그때까지 벤추라카운티에 코리안 아메리칸 여자검사가 없었는데 처음 본 나를 여자검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판사가 아시안 아메리칸 여자는 통역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을 때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은 법정에서, 대학에서, 정계에서, 재계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에서 만나는 아시안 아메리칸을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것인가.
금년은 선거의 해다. LA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올해는 중요한 해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들을 위해 나서고 그들이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선거는 자유, 재정, 권력, 정치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몫을 나눠 받기 위한 경주요 싸움이다. 지난번 예비선거가 끝난 후 어느 날 아침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아주 기분이 나빴다. 정치평론가들이 나와 인종별 투표 성향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라티노 아메리칸의 퍼센티지를 말했다. 그런데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래도 아시안 퍼센티지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아시안은 어딜 갔다는 것인가? 뉴스가 끝날 무렵에야 마침내 아시안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아시안 아메리칸의 비율은 너무 작아 ‘무시해도 좋을’(negligible)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 인구만해도 몇 명인데, 어떻게 아시안 유권자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란 말인가. 나는 충격을 받고 좌절했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침묵으로 인해 부당하게 고통을 겪었다. 4.29폭동 때 많은 한인 가정이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중 대다수가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상당수가 화염 속에 사라져간 아메리칸 드림을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한인들은 경찰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그리고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얻지 못한 채 LA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이 정치적, 사법적으로 힘을 얻지 못하는 한 우리가 도와 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응답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침묵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가 투표를 한다는 사실을, 우리의 표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때 후보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배심원으로도 적극 나서야 한다. 더 많은 한인 판사, 검사, 관선 변호사가 나오도록 압력도 가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브로큰 잉글리시로 더듬거리더라도 코리안 아메리칸 문제에 신경을 써주는 정치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 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의 복잡한 관습과 사상 그리고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현재 미국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책임의 일부는 오랜 세월 침묵만을 해온 우리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벙어리가 아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문화를 가진 강력한 커뮤니티다. 잠자는 거인이다. 이제 침묵의 잠에서 깨어나 우리의 생각을 알려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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