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는시간 맞춰 데리러 갔는 데 아이가 안보여요. 조금 기다리니 아이가 울면서 나오는 겁니다”
토렌스에 사는 폴 김씨의 3개월‘투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생활 20년이지만 인종차별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아무리 달리 생각하려해도 인종차별이라고 밖에는 볼수가 없더군요”
지난 3월말, 7학년에 재학중이던 김씨의 아들 매튜는 과학과제물을 둘러싸고 백인 동급생과 언쟁이 붙었다. 가벼운 놀림으로 시작된 말이 험해지다가 상대학생이 주먹질을 하자 매튜도 맞받아치면서 싸움이 되었다. 근처에 있던 교사에 의해 두 아이는 교장실로 끌려갔다. 그런데 교장이 내린 징계가 이외였다. 먼저 때린 백인학생에게는 아무런 벌이 내려지지 않고 김군에게만 3일 정학처벌이 내려졌다.
“상대 학생의 아버지는 경찰관, 어머니는 교사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상관이 있었는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장의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교장에게 쓴‘재고’요청의 편지를 필두로 김씨는 평생 가장 많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교장의 무성의한 태도에 교육감, 지역구 주하원의원, 연방교육부 인권위원회, 경찰국, 검찰청… 관련이 있다 싶은 데는 어디든 편지를 보냈다.
“1백통은 보낸 것 같습니다. 안되는 영어로 편지쓰느라 무척 고생했습니다”
생업을 제쳐두고 변호사까지 선임해 3개월을 매달린 끝에 김씨는 교육구로부터 “처벌이 편파적이었다”는 공식사과를 받았고 김군의 정학기록은 삭제되었다. 그 많은 시간과 돈, 정력을 쏟을 만큼 가치있는 일이었을까 -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아들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니까요.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아이가 원한을 품고 돌이킬수 없는 일이라도 저지르면 어쩌겠습니까”
김군 케이스를 접한 한인부모들의 반응은 대체로‘아이 키우기 조마조마하다’였다. 이제까지는 별 탈없이 학교생활을 잘 해왔지만 언제 아이가 인종적 놀림의 대상이 될지, 그러다 욱하는 성격에 상대 아이를 두들겨 패는 건 아닌지, 혹시라도 인종차별적인 교사를 담임으로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선 한인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남가주는 소수계가 많아 교사들의 시각이 대체로 공정하지만 아시안에게 이상하리만치 차별적인 교사도 없지는 않다. 공부 잘하는 아시안, 부유한 아시안에 대한 일부 백인들의 시기심이다. LA인근 부촌에 사는 한 주부가 지난가을의 경험을 말했다.
“3학년짜리 아들이 새학기 첫 성적표를 받아왔는 데 성적이 엉망이었어요. 그전 2년간 워낙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학급에서 연극을 하는 데 아이가 연습을 안해요. 그래서 물었더니 자기는 뒤에 가만히 서있는 역이라는 겁니다. 대사있는 역을 맡고 싶어 열심히 손을 들었지만 선생님이 안 시켜주더라는 것이었어요. 대역 맡은 아이들은 모두 백인이더군요. 아시안아이는 교사의 관심권 밖에 있었던 것이지요”
담임선생 면담시 이 주부는 아이의 이전 학년 성적표, 상장들을 보여주며 아이에 대한 교사의 평가에 조목조목 이의를 제기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며 기분나쁜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 케이스를 예로 들며 의견을 제시하자 태도를 바꾸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평가가 제대로 나왔어요”
속상한 일에 부딪치고 보니 교사보조로 봉사하며 사귄 교직원들, 평소 교분이 있던 타인종 학부모들의 조언이 힘이 되더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관계의 힘이었다.
한인부모들의 교육열은 모범적이지만 초점이 너무‘내 아이의 실력향상’에 맞춰져있다. 학교당국이나 타민족 학부모와의 관계에는 대개 소홀하다. 학교도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인만큼 관계가 돈독하면 그만큼 대우가 우호적이다. 인종차별의 덫이 언제 덮칠지 몰라 자녀의 학교생활이 줄타기곡예 보듯 아슬아슬하다고 걱정만 할 일이 아니다. 부모로서 할 일이 있다. 혹시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 자주 자녀의 학교를 방문해 학교일을 돕고 타민족 학부모들과의 교분을 넓혀야 하겠다. 관계의 망이 넓고 탄탄할수록 아이는 안정된 학교생활을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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