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미 자비의 두 아들은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가업전수는 종종 그들을 수천 마일, 때로는 대륙 간으로 갈라지게 한다. 파아보와 크리스찬 자비는 아버지처럼 지휘자로 활동, 자비 집안을 클래식연주자들 앞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가족이 세명이나 있는 유일한 집안으로 만들었다.
62세의 니미는 디트로이트 심포니의 음악 감독이며 스웨덴 고텐버그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이다. 37세인 파아보는 2001년 가울 신시내티 심포니의 음악감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27세의 크리스찬은 LA필하모닉의 부지휘자다. 또 그는 뉴욕 현대음악그룹인 앱솔루트 앙상블의 설립자이며 음악 감독이다.
최근 니미는 파리서 "카르멘"을 지휘했고 그동안 파아보는 이태리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공연을 가졌다. 크리스찬의 앱솔루트 앙상블은 뉴욕에서 공연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깝다. 이들과 파아보와 크리스찬의 어머니인 릴라, 파리의 플롯 연주가인 누이 마리카는 자주 대화를 나눈다.
가족 중에서는 니미가 가장 바쁘다.
고텐버그 심포니와 한 최근 미국순회공연 후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와 10번의 카르멘 공연을 마쳤고 그 사이에 파리서 다른 오페라와 심포니를 지휘했다. 그는 또한 소련 붕괴후 출입이 자유로와진 에스토니아에도 사흘간 다녀왔다. 그는 동경에서 "쉬는 날이 없다"고 말하는 택시 운전사를 만난적이 있었다. 그후로 니미는 자신을 "쉬는 날이 없는" 지휘자로 표현한다.
아들들은 지휘면에서 아버지의 에너지, 정열, 즐거움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의 빽빽한 스케줄에는 고개를 젖는다.
"아버지는 완전히 일에 미친사람이다. 아마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연주집을 보면 아버지는 가장 많이 음반을 출시한 지휘자다. 대부분은 들어보지 못한 작곡가들의 작품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이게 탐험처럼 칼하나 들고 아마존 밀림으로 가는 것과 같다. 아버지의 인생자체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찬은 말한다.
니미 자비는 주로 스카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고텐버그 심포니와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선호하는 외국 레코드 회사 두군데를 위해 거의 350장의 CD를 제작했다.
파아보 자비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대형 도서관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음악도서관을 집에 갖고 있다. 아버지는 지속적으로 첫선을 보이는 새로운 음악과 수백 년간 들을 수 없었던 오래된 작품들을 지휘한다"
니미 자비의 부모 역시 아마추어 연주자였다.
"아버지는 ‘이리와서 들어봐라. 이게 어떤 작품이니’하고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글라주노프같은데요’라고 대답하면 아버지는 ‘맞았다. 이제 가도 된다’라고 말했다"
니미 자비는 이렇게 아버지를 회고한다.
니미 역시 아이들과 이같은 게임을 계속했다. 니미의 형 발로는 전문 음악인으로 색소폰과 기타를 연주하며 지휘도 한다. 니미는 레닌그라드에서 공부하고 에스토니아의 라디오 오케스트라, 탈린 오페라등을 거쳤다. 탈린 오페라에서 니미는 젊은 작곡가 아르보 파트를 만나 그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이 음악에서 그는 여전히 남보다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그는 38세에 로마의 한 지휘경연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이는 그의 작은 나라에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두곳의 오케스트라가 그를 맞으러 공항에 나와 "아이다"에 나오는 개선행진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3년후 그는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성경구절이 포함된 "크레도"의 일부를 지휘하면서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내놓고 짐을 쌌다. 나도 마침내 에스토니아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니미는 이렇게 당시상황을 설명했다.
자비스가족은 각기 가방 두 개와 100달러씩을 들고 1980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1985년 미국시민이 됐다.
파아보 자비는 지휘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알 무렵, 돌아서기에는 너무 늦은 일이었다"
17세에 미국으로 온 파아보는 지휘자로서 아버지가 작고 고립된 나라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배운 첫 20년의 세월을 부러워한다.
"지휘는 인생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직업이다. 50전까지는 아무도 지휘자가 아니다. 그때까지 하는 일은 모두 준비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휘는 일종의 마법이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들은 태어나야한다. 인도하고 조언해 줄 스승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휘자 아버지를 가진 것은 너무나 값진 일이었다"
1년전 그는 스톡홀름 왕립 교향악단과 영국 버밍햄 심포니의 객원지휘자로 활동했다.
신시내티의 첫 느낌은 괜찮았다. 연주홀의 음향도 좋았다. 오케스트라 역시 오랜동안 지저스 로페즈-코보스라는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일해왔던 것이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최근 라 스칼라와 데뷔무대를 가졌고 예상치 않게 다니엘 바렌보임이 병이나는 바람에 베를린 필하모닉과도 연주하게 됐다. 이번 여름에는 제임스 레빈, 주빈 메타,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함께 스위스의 한 페스티벌의 지휘를 맡고 이어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세계 순회공연을 이끌 예정이다.
한편 크리스찬 자비는 앱솔루트 앙상블에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다.
그는 빨간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18개 악기로 이루어진 그룹을 지휘한다. 이 그룹은 그의 말을 따르면 "정상적인 것을 이상하게 편곡해 연주하는" 그룹이다. 그는 또한 앱솔루트, LA필하모닉, 유럽에서의 초청 지휘로 시간을 나눠 쓰는 것이 그를 더 나은 지휘자로 만든다고 말한다.
뉴욕에서의 3월 콘서트에서는 말러의 "심포니 4번"이 12명의 앱솔루트 멤버들에 의해 연주됐으며 호른 없이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 이 편곡은 1920년 쇤베르크의 학생이 만든 것으로 신시사이저 파트는 소형 오르간 용으로 씌여졌던 것이다.
크리스찬은 강조한다.
"우리는 노란 방에서 가구를 가져다 초록색 방에 들어놓고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본다. 우리는 창작성, 음악상, 자기표현에 관한 그룹이다. 음악, 조명, 무대와 함께 분위기를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러 가서 즐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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