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한인사회도 이민 1세들을 중심으로 은퇴의 시기를 생각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은퇴를 생각하게 된 주된 요인으로는 그 동안 해온 일이 너무 지겹다는 것이고, 예전처럼 몸이 안 따라가 점점 힘이 들고, 그리고 이제는 남들처럼 쉬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단순한 경제적인 행위, 즉 먹고 살기 위해서 돈버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돈을 벌지만 더 나아가 자기자신의 성취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지름길도 된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일에 만족하면서 하는 정규적인 일을 직업이라고 할 때 영어단어 중에 직업을 나타내는 Calling 이라는 단어가 있다. Calling이라는 단어에는 천직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가볍게 그리고 쉽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어머니 친구분 중에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조그마한 포목상을 하시던 분이 있다. 그아주머니의 젊어서의 꿈은 훗날 일수 돈놀이 전주(錢主)가 되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손님 발길이 뚝 끊겨 한숨을 내쉬며 진열된 상품을 가지런히 매만지며 애꿎은 하늘을 원망하고, 때가 되면 비좁은 가게 안에서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다달이 내는 점포세는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무심한 달력을 쳐다 보면서도, 그래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크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다.
아주머니는 매일 오후 늦으막하게 진한 화장과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찾아오는 일수 도장 찍는 할머니를 다른 상인들처럼 ‘우리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도 늙으면 할머니처럼 1년 365일 눈이오나 비가오나 언제나 돈을 벌 수 있는 전주가 되겠노라”고 홀로 다짐을 하였다.
어느덧 30년 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제 돈도 벌만큼 벌었다고 자부한 할머니는 인생을 같이한 점포를 과감히 팔고 젊었을 때의 꿈인 일수돈 놀이꾼이 되었다. 할머니는 흔히 말하는 화려한 은퇴를 하였다. 그런데 1년도 채 되기 전에 할머니는 남대문 시장에 다시 점포를 열었다. 놀란 주위의 상인들은 할머니에게 “편히 돈 장사나 하시지 왜 사서 고생하세요?” 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주위를 한번 둘러 보시며 대답하기를 “저녁때 집에 들어가서 돈 세는 재미가 없어. 건강을 지키는 데는 이 돈 냄새가 최고야” 라고 웃으며 대답하였다.
우리의 인생과정을 경제적인 행위 즉, 돈을 벌고 쓰는 시기의 관점에서 볼 때 네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을 팔십세로 보면 태어나서 스무살까지는 부모로 부터 일방적으로 양육되는 시기이다.
스스로 먹고 살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시기로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일생의 4분의 1를 부모에게 의탁한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자기 스스로 먹는 것을 찾을 수 있지만 인간 만은 바로 옆에 있는 엄마의 젖꼭지조차 찾아가지 못한다. 두 번째 단계인 스무살부터 마흔살까지는 인생 중 가장 왕성한 체력을 가지고 적극적인 경제행위를 한다.
자기 스스로 먹고 살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어 배우자를 찾고 , 더 나아가 자식까지 낳아 부양한다. 세 번째 단계인 마흔살부터 육십세까지는 그동안 바삐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저축을 하는 시기이다. 훗날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보다 많은 저축을 하려 하고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자녀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주기 위하여 서서히 증여가 시작된다. 마지막 단계로 육십세 이후부터는 육체적으로는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으면서 그동안 벌어 놓았던 돈을 일방적으로 쓰는 단계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 국가에 낸 세금의 일부분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민 1세들이 은퇴의 시기를 고려하는 시점이 개인의 육체적,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55세부터인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나 미국의 개인은퇴연금을 벌금없이 인출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볼 때나 최소한 5년 정도는 빠르다. 은퇴 준비과정에 있는 1.5세대 혹은 은퇴시기를 고려하고 있는 1세대, 그리고 이미 은퇴한 올드타이머들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삶의 질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남대문시장 할머니의 “돈 냄새가 최고지”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생각해보자. 땀과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근로소득이 최고의 소득임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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