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운영, 무인가 4년제 대학과정 ‘슐러 미술학교’
조각 수업 시간, 학생들은 나무 대좌 앞에 서서 젖은 찰흙으로 조심스럽게 인간의 얼굴을 빚고 있다. 흉상은 놀랄만큼 사실적이다. 두 눈, 코, 입과 표현은 진짜 사람 같은 얼굴로, 백화점의 마네킹과는 다르다.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 스튜디오를 걸어다니며 조용한 충고와 격려로 작품을 검토하는 강사의 지도 하에 학생들이 작업하는 이곳 ‘슐러 미술학교’는 옛 거장들의 전통이 수세기 전 그대로 전수되는 곳이다. 유행에의 동조나 20세기 모더니즘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40여년전 남편 한스 슐러 주니어와 함께 학교를 설립한 앤 디두쉬 슐러는 "이 학교는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곳"이라고 학교를 소개했다.
부부는 예전에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미술대학(MICA)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었다. 한스의 아버지 한스 슐러 시니어도 1925년부터 1951년동안 가르치며 디렉터를 맡았던 곳이었다. 슐러가문은 독일 미술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유럽과 미국서 최소 6대에 걸쳐 계속되어온 장인 가문의 길에 자부심을 가진다. 앤의 친정인 디두쉬가 역시 독일에서 화가로 오랜 역사를 가진 집안이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즈음 미술 및 미술 교육의 유행에 변화가 시작됐다. 모더니스트 추상을 앞세운 젊은 세대가 슐러가 사람들이 훈련받은 드로잉, 해부학, 원근법 같은 전통에 점차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앤 슐러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걸 보는 것은 가슴 아팠다. 사람들은 우리가 훈련받은 전통 기술이 아니라 추상만 다루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학교를 열기로 마음먹었다"고 개교 취지를 설명했다.
1959년, 앤 슐러와 남편은 한때 아버지 한스 슐러 시니어의 스튜디오였던 E. 라파예트 거리 5번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슐러 시니어는 1906년에 이 스튜디오를 짓고 1912년에는 옆에 가족이 살 주택을 건축했다. 최초의 슐러 학교 학생들은 이 건물에서 수업했으며 학교는 이후로 계속 라파예트 거리에 남아있다.
현재 82세인 백발의 앤 슐러는 볼티모어지역 화가중 고전-사실주의의 일인자이며 여전히 가족 사업체인 특이한 미술학교의 대표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남편은 지난해 사망했지만 이 부부의 딸인 프란체스카 슐러 게린이 조각수업을 맡고 있다. 손자 앤드류 슐러 게린은 회화를, 조카 프리츠 슐러 브릭스는 드로잉과 수채화를 가르친다. 이 가족중 누구도 자기 스타일이 현재 미술관, 딜러, 수집가의 세계에서 한발짝 벗어난 것이란 사실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프란체스카는 "사람들은 수천년간 구상미술을 즐겼고 지금 단지 짧은 기간동안 추상미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것이 과연 영원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일을 할 뿐이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한 적은 한번도 없다. 가치없는 짓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앤 슐러는 초상화를 가르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장르는 그녀가 젊을 때 익혀서고 수십년간 기술을 다져온 부분이다.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기본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슐러학교는 대부분 볼티모어-워싱턴 지역 출신 풀타임 학생 17명이 재학중이다. 1년 학비는 3,400달러로 커뮤니티 칼리지와 비슷한 수준이며 MICA의 연 등록금 1만8,460달러의 5분의 1이 못되는 수치다. 슐러학교는 4년 과정이지만 메릴랜드주정부로부터 인가받은 것은 아니며 졸업을 해도 학위가 수여되지 않는다.
볼티모어 예술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슐러 집안이 하는 일을 중요도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일부는 이 스타일을 단순한 장식 미술로 치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훈련에 찬사를 던진다.
’C. 그리말디스 갤러리’ 주인 콘스탄틴 그리말디스는 자기의 취향은 아니지만 분명히 슐러 스타일의 작품을 위한 곳이 있다는데는 동의한다.
반면 ‘고메스 갤러리’ 주인인 월터 고메즈는 학교가 중요한 빈틈을 메운다고 생각한다. 고메스는 "슐러 학교는 회화의 기술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그냥 미지로 던져진 채 스스로 모든 것을 찾아내게 하는 많은 학교들과 매우 다르게 학생들은 이곳에서 사고의 과정과 기술을 배우며 이는 언제나 값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MICA서 20년간 디자인을 가르쳤고 현재 이사로 봉직하는 빌 슈타인멧츠는 슐러 가족, 특히 앤 슐러는 많은 성공한 볼티모어지역 작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고 말한다. 슈타인멧츠는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1940년대에 앤 슐러의 선생이었던 자크 마로거가 가르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순수 예술 커리큘럼"이라며 "이는 재능이 있고 또 그 재능을 사용할 줄 아는 뛰어난 화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술"라고 말했다.
옛 대가들의 스타일이 과연 새 천년에도 여전히 적절할까? 슈타인멧츠는 "모든 예술은 중요하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표현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도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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