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꽃들과 대화하면서 생활한지 벌서 17년이나 되었어요. 구름에 달가듯이 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꽃을 보고 살다보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리고 기쁨과 용기가 샘솟기도 하지요”
‘꽃 예찬’에 여념이 없는 서석권씨(72)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연꽃집(Water Lily Flower Shop: 7152 W. Higgins Ave., Chicago)의 고정 멤버로 일하고 있다.
4남2녀중 장남인 서정율씨가 미시간 주립대에서 유학을 끝낸 뒤 시카고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지난 82년에 할렘과 히긴스가 만나는 곳에서 열게된 연꽃집은 장남 내외, 미국인 디자이너와 배달원 2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한 송이 꽃이라도 소중하게 다루고 정성을 다하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따뜻한 마음이 된다고 말하는 서씨는 “많은 꽃들 중에서 간혹 팔려나가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꽃이나 끝내 버림을 당하는 화분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서글퍼지지요”하고 말한다.
꽃들은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 그 나름대로의 특이한 개성미가 있다는 서씨는 그 때문에 꽃에 대한 노래도 많고 꽃이 인연이 되어 사랑하게 된 사람도 많다고 얘기한다.
또한 한국의 나라꽃이 무궁화이듯 각 나라에는 나라꽃을 지정해 두고 있으며, 특히 미국인들의 생활 방식은 꽃에서 꽃으로 이어진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아기를 낳을 때도 남녀를 구분해 꽃색깔을 달리하는 나라가 이곳 미국이지요. 남자 아기는 파랑색, 여자 아기는 분홍색으로 꽃꽂이를 하고 리본과 풍선을 달아 선물하면서 생명의 기쁨을 표현하지요”
아기들이 태어나 매년 생일때면 꽃선물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성인이 된후에도 일생의 최고로 기쁜 결혼식때 신랑 신부의 드레스와 양복에 맞게 화사한 꽃들을 준비하며, 한 인생을 마친 다음 엄숙한 장례식때도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이생의 마지막 길을 가게 된다. 이처럼 어느 달이고 꽃을 사야하겠금 여러 가지 행사가 달마다 들어있다.
서석권씨가 말하는 1년의 꽃 스캐줄은 다음과 같다.
- 1월에는 흰눈과 같이 하얀 카네이션으로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해주고 2월은 발렌타인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확인하며 꽃을 선물하고, 3월에는 그린 카네이션으로, 4월에는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행운을 뜻하는 튜립과 추억의 히야신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잎보다 꽃이 먼저 상한 가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매화와 희망의 전령사인 샛노란 개나리도 빼놓을 수 없다.
백합으로 가득 찬 부활절이 지나면 ‘비서들의 날’이 온다. 많은 사장들이 비서들에게 아름다운 꽃을 선물하며 더 따뜻한 서비스를 당부한다. 5월이 오면 온 세상이 어머니날로 부산해진다. 5월 둘째 일요일인 어머니날은 1912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면 빨간 카네이션을, 안계시면 하얀 카네이션을 저마다의 가슴에 달곤했지만 이곳에서는 카네이션뿐만이 아니고, 또 그 대상도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꽃을 바치는 남편들로 꽃집이 붐빈다. 자신의 생모뿐만 아니라 친구의 어머니나 홀로 양로원에 있는 이웃이나 친지의 어머니들께도 꽃을 선물하며 그 노고를 위로하곤 하는 것이 미국인의 풍습이다.
어머니날이 지나면 메모리얼 데이가 오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7월에는 미국 독립 기념일이 있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10월에 스위티스트 데이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바치며 사랑을 나눈다. 11월에는 미국의 대명절인 추수 감사절이 온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에는 꽃선물도 더욱 풍성해진다. 곧이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온 세상은 포인세티아의 새빨간 물결로 뒤덮힌다. 꽃집에서는 즐거운 비명이 계속된다. -
“꽃들과 대화하며 살다보니 하루하루가 너무나 빨리 지나가요. 말없는 꽃들을 바라볼때 마다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자주 글(에세이)을 쓰게 되었지요. 한국일보사에도 수없이 보냈어요. 간혹 퇴자 맞기도 했지만 글을 쓰면 속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낼 수 있어 꽃과 사는 것만큼 속이 시원하지요”
둘째와 넷째 아들은 뉴욕에 있고 막내는 ‘서정일 장의사’를 하고 있다. 딸 둘은 한국에 있어 아직도 한 집안의「아버지」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서석권씨는 한국으로, 뉴욕으로 분주히 오가며 아들, 딸 손자손녀들을 만나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배미순기자 msbae@koreatimes-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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