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환하게 웃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격의 없는 태도로 대화를 나눈다’ 김정일의 자유분방한 언동과 모습이 한국민에게 충격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한국언론의 보도다.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TV를 통해 연일 방영되면서 일종의 ‘김정일 신드롬’이랄 수 있는 현상까지 일고 있는 모양이다.
미언론도 남북한정상회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언론은 그러나 ‘김정일의 언동’에 이례적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면서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김정일은 지금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6개월후, 1년후를 내다보자. 또 다시 위기가 발생하고 또 다시 미사일 외교가 필요할지 모른다."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짐 맨의 지적이다. 이같은 회의적 시각과 함께 미언론이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문제가 주한미군 문제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발발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불러오는 연계철선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바로 북한의 남침으로 이어 질 수 있다’ 주한미군은 한국안보와 직결된다는 게 한미 안보관계를 지배해온 두터운 믿음이었다. 남북분단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논의는 그러므로 금기사항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언론들은 그러나 이 금기사항을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결과 한국과 미국의 안보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의 재조정도 불가피하다’는 게 미언론의 대체적 전망이다. ‘주한미군 존재의 이유는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남북한정상회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의 설명이 어렵다’ 월 스트릿 저널등 미국의 대표적 언론들은 이같은 요지의 주장을 펴면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곧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겻들인다. 이같은 미언론의 보도 행간 행간에는 워싱턴이 보이고 있는 다소간 신경질적 분위기도 뭍어있는 듯하다.
주한미군 성격 재정립론은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을 밝힌 미합참의 ‘조인트 비전 2020’ 전략 보고서에서도 이미 제기됐다. 이 보고서는 두가지 가정하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획기적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내다 본다. 그 첫 번째는 중국이 21세기에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적대국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두 번째는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한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은 남북간의 대결이 한국측의 승리로 끝났다는데서 출발한다. 남북간의 이데올로기 및 경제 대결은 끝났으므로 이제 남은 문제는 남북평화공존의 조건협상밖에 없다는 게 미행정부의 진단이다. 주한미군 유지문제는 그러므로 ‘가상의 적’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 차원에서 새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천하의 대세는 세계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다. 21세기에서 그 물결은 더 높아질 것이다. 세계화가 한층 더 심화되면서 국경은 무너지고 있다. 한반도 통일도 그 과정에서 가시화될 것이다. 세계자본주의의 격랑속에 홀로 외딴 섬으로 남은 북한의 폐쇄 체제를 여는 1차적 힘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북한은 별수없이 미국이 이끄는 세계자본주의의 시장에 편입되게 될 것이며 거기서 남북한은 만나게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첫 단계일 수도 있다. 또 남북정상의 5개항 합의서서명은 남북이 평화공존시대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의 표정은 왜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을까. 아마 일종의 ‘표정관리’ 일지도 모른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미국 주도의 동북아 안보전략의 1단계일 뿐이다. 따라서 갈길이 먼 현 시점에서 아직은 표정을 풀 때가 아니라는 각오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모종의 주문 일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자마자 ‘김정일 신드롬’을 보이고 있는 한국이다. 이런 한국이 남북 평화공존기를 맞아 중국쪽으로 급격히 경사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경고 시그널로도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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