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자그만 치 사반 세기가 걸렸다. 길고 긴 이별이었다.
남북 두 정상간의 만남-이는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지 55년만에 이루어진 극적인 사건이었다, 분단의 벽을 허물고 서로 손을 맞잡고 민족간의 멀고 먼 별리를 상징적으로 종식한 두 정상간의 상면, 그야말로 한민족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다.
55년이란 세월은 실로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 생애에 거의 가까운 시간이다. 이런 긴 세월을 우리는 서로가 헤어져 같은 민족끼리 등을 돌린 채 살아왔다. 인류역사상 어디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이북을 드나들던 한 목사가 들려준 남북한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상봉. 그가 머물던 한 북한의 호텔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우리들의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남쪽의 한 남편이 55년 전 헤어진 부인과 아들을 만나 가족이 통곡하는 장면이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헤어졌던 부인과 두 살 난 아들을 만나보니 부인은 이미 70세가 넘은 노인이 되어 있었고 아들은 쉰 살이 훌쩍 넘는 말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어찌 어찌하여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났지만 너무도 기가 막혀 말문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부인이요, 아들이기에 평생을 그리다 가까스로 찾았지만 가족의 모습은 이미 예전의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저 목놓아 우는 가족들의 곡소리에 하늘만 쳐다보고 담배만 꾸역꾸역 피고 있더라는 것이다.
목사의 말인즉, 이런 저런 방법으로 비밀리에 수소문해 이렇게 이북에 가 만남의 장면이 연출되는 비극적 주인공은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요, 초상집을 방불케 한다고 했다. 이산가족 중에 또 한 분은 17세인 학생 시절 어머니 보고 여름방학 때 돌아온다고 하면서 서울에 공부하러 갔다가 헤어진 후 영영 가족을 못 만나는 신세가 된 케이스다. 방학 때 어머니가 옥수수 먹으러 오라고 했는데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옥수수가 쉰 번도 더 익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부모와 생이별 상태에서 7순이 넘는 노년기를 맞고 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을 거라고 그는 눈물을 그렁이며 말했다. 그리고 북한 얘기만 나오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떨구곤 했다. 이렇게 가족과 헤어진 이북 실향민들의 수는 의외로 미국에 많이 있다. 이왕에 고향을 잃은 입장에다 혹여 시민권이라도 따게 되면 생전에 고향 땅을 밟고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기대심리 때문이다.
평안북도가 고향인 한 실향민은 그가 살던 집 주소를 자나깨나 입에 되 뇌이고 지내다가 결국은 고향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나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람은 많이 있다. 조금 더 늦었으면 한 사람도 못보고 모두 다 한을 안고 죽어갔을 일이다. 앞으로 얼마만큼 이뤄질지 모르나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 희망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LA 심장내과 전문의 정동규박사가 출판한 ‘3일의 약속’은 민족분단이 나은 이별의 아픔을 기록한 대표적 저서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3일 후에 돌아오겠다고 남한에 내려왔다 휴전선이 막혀 못 올라간 이산가족중의 한 사람. 그는 이 책에서 이산가족으로 겪은 쓰라린 아픔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서술했다.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정을 갖고 있던 그는 80년대 들어 시민권을 취득, 마침내 어머니 생일인 83년 7월 5일 떠나온 지 33년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찾았는데 그녀는 이미 4년 전 작고한 상태였다. 그 때 그는 어머니의 비석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찢어진 강토에 이런 이산가족이 어디 정박사 뿐이랴. 이미 죽은 사람도 많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도 많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제 가족상봉은 문이 열려도 못한다. 20세 사람이 75세가 되는 판이니 이들이 세상을 하직할 날도 머지 않다. 그들에게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 합의란 얼마나 가슴 벅찬 소식인가. 긴 이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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