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다녀올 때마다 빼놓지 않는 일이 있다. 다음번에 서울 갈 때까지 읽을 책을 사오는 일이다. 뉴욕이나 뉴저지에도 서점은 있지만, 서울에서 사면 훨씬 싸니까 항상 30여권 정도는 사갖고 온다. 거기에다 아는 분들이 주는 책까지 더하면 가방 손잡이가 떨어질 정도로 무겁다. 그래도 그 무거운 가방을 끌고 나오는 마음은 상쾌하고 뿌듯하다.
이번 서울 길에도 무슨 책을 살 것인가 심사숙고하면서 신문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폈는데, 내 눈을 끄는 책이 있었다.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제임스 도드슨의 ‘마지막 라운드’라는 책이 아직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은 ‘뉴욕타임스’ 목록에도 여전히 올라있어서 ‘사람들은 아직도 아름다운 이야기엔 감동하는구나’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책이다.
‘마지막 라운드’는 골프 칼럼니스트인 지은이 제임스가 암 선고를 받은 팔순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가졌던 골프여행 이야기이다. 여행길의 두 부자는 지난날을 회상하고, 인생의 굴곡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독자들은 골프라는 운동에 대해 대단히 유식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골프를 통한 인생의 교훈을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 부자간의 사랑 혹은 아들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동참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꿈을 그대로 꾼다’고 했던 게 심리학자 ‘융’이었던가? 열살 무렵부터 아버지에게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제임스는 인생에서 여러차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래서 인생의 목적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언제나 아버지가 옆에서 그를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인도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서야 그런 아버지의 마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면서, 마법으로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우연히 깨달은 사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읽어준 것과 똑같은 책 ‘피터 팬’을 자신이 자기 아이에게 읽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읽어준 이야기에는 항상 두 가지 요소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즉, 도덕과 인생의 지침이 되는 요소였다. 광야를 헤매는 인디언 용사들의 전설,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간 아들을 그린 그리스 신화, 산타마리아호의 뱃머리에 서 있는 클럽부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별을 관찰하면서 여행하는 남자, 그리고 인간의 혼은 별과 같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그리스인들…
어쨌든 골프는 그의 아버지에게 인격형성의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짧은 퍼팅에서 실패한 그가 그린 표면을 퍼터로 세게 치자 아버지는 그에게 골프 코스에서 나가라고 명령하고, 이를 보고하게 해서 그는 2주일 동안 그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해주었고, 금성과 북극성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기도 했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찾으면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들과 함께 나누는 아버지의 사랑은 그 어떤 로망보다도 더 절절히 가슴을 울려주었다.
나는 어느 해 부터인가 때때로 아빠와 함께 춤을 추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에겐 함께 춤을 추어줄 아버지가 없지만, 아빠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한 흥분을 느낀다.
아빠와 함께 추는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니다. 아빠와 아이는 춤을 추면서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평소에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신비한 사랑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임스 도드슨이 말하는 마법의 순간이다.
아빠와의 이 마법의 교감을 통해서 아이들은 흔들렸던 질서감을 찾고, 희미했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의식 안에서 분명한 형태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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