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은 『6월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양측이 회담의 상징적 의미와 내용을 충분히 협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회담후 그 목적에 의문을 갖게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전략화해연구소(ISR·이사장 손인화 목사) 코리아 소사이어티 공동 주최로 15일 연방 하원 레이번 골드룸에서 열린 북한 포럼에서 그레그 전대사는 『외교적 능력을 평가받고는 있으나 여소 야대의 정국을 이끌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한 번도 외국 정상과 회담을 가진 적이 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크게 다른 포지션이 회담의 또다른 짐이 되고 있다』면서 『두 정상은 회담에서 얻어질 성과를 먼저 분명히 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해와 일치를 향한 평양 정상회담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그레그 전 대사는『한 번의 만남은 쉽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양측이 기대하는 바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어쨌든 두 정상이 모두 한국인이라는 긍정적인 합일점을 바탕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만큼 회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첫 패널 토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존 메릴 박사(국무부·한반도 전문가)는 『남북 정상회담은 하나의 도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에서 얻어진 중요한 성과』라며 『북한은 그동안 개방을 나름대로 개방을 원하고 있었으나 함부로 문을 열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메릴 박사는 또『한국의 포용정책으로 인해 북한 경제 시스템도 조금씩 변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윤영관 교수(국제정치경제학)는 『남북 정상회담을 기능적인 면에서 양측이 실리를 취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왜 회담 테이블에 나오기로 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북측의 반응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조심스레 낙관론을 폈다.
윤교수는 『하지만 회담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제한 뒤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북한의 기간 산업 재건을 위한 경제 협력과 이산 가족 상봉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인들이 이번 회담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그레그 전대사는 『회담에 응한 것은 국제 사회에서 소외된 북한이 결국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토를 달았다.
한편 존스 홉킨스대학의 스티븐 사보 교수(유럽연구소)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독일 통일이 있기 10여년전인 80년대 초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사보 교수는 그러나『동독은 모든 면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어서 소련의 정책이 바뀌자 동독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나 북한은 남북 통일 협상에서 동독보다는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사보 교수는 『독일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황이 급속히 진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 주변 국가들은 대비가 늘 필요하다』고 경고한 뒤 『통일은 즉 이산 가족간의 상봉이 먼저 우선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미한국대사관 심윤재 정무참사관은 『북한이 한국 정부의 햇빛 정책이 다른 정치적 의도는 없고 북한을 개방으로 인도하려는 순수한 의도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 참사관은 『이번 회담 성사에 국제 사회에서 더 이상 소외될 수 없다는 북한의 인식과 붕괴돼가는 경제 현실 자각도 기여했다』라며 『인도적 차원의 원조의 대가로 북한은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산 가족 상봉 협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 번째 패널에서는 국제전략화해연구소의 전영일 소장, 브루스 커밍스 교수(시카고 대학), 존 멀리건 연구원(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 켄 키노니스 박사(전 국무성 한국담당관), 마이크 스피르타스 연구원(외교 및 국가 정책개발원) 등이 참석해 토의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커밍스 교수는 『지난 10여년간의 남북 관계를 돌아보면 한반도에서 분쟁이 종식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엿보이게 한다』며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군의 한반도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북한이 지금은 미군의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중개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 도구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뒤『이번 정상회담이 한국 전쟁을 영원히 종결시키는 기회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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