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났다. 이번 회담은 북한 핵개발과 군축등 안보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으나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나 평화공존에 합의하고 이산가족 상봉등 한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는데서 큰 의미를 찾을수 있다. 본보 논설·편집위원들의 방담을 통해 이번 회담의 성과와 이를 보는 해외의 시각, 문제점등을 짚어 본다.
(참석자: 옥세철 논설위원, 박덕만·민경훈·권정희 편집위원)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옥위원: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한민족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남북 양측이 사실상 공식 인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미국, 중국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현실인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남북한은 이제 평화적 공존기에 들어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남북정상이 합의서에서 통일문제에도 언급했지만 이는 당분간 선언적 의미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민위원: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측이 계속 주장해 오던 이산가족 찾기, 경제협력, 문화·체육 교류등 ‘소프트’한 분야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일 것입니다. 북한측이 국시로 추구하고 있는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합의문에 들어가는 있으나 양국이 현상태로 평화공존하겠다는게 양측의 실질적 입장인 것 같습니다.
▲권위원: 공동선언문의 1,2항은 남북한의 2개 국가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공존할 지를 다룬 중요하고 필요한 조항이기는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를 초래할 일은 아니지요. 지향점에 대한 원칙을 합의한 수준일 뿐 구체적 실행에 들어가자면 상당한 걸림돌이 있을 것입니다. 정상회담의 성과를 눈으로 보고 피부에 와닿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3항의 민족의 교류 조항입니다. 남과 북의 실향민들이 오고 가고, 수십년 못만나던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게 되면‘세상이 변하는구나’‘통일도 되겠구나’가 실감이 나겠지요.
▲박위원: 문화나 체육부문의 교류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운동선수들이 첨단 기재를 이용한 현대식 훈련을 받고 있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아직도 대부분의 종목에서 전근대적 수준의 훈련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축구의 경우 북한선수들 수준이 한국선수들 수준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모양입니다. 체력도 뒤지구요. 그런 형편에 선수 비율을 일대일로 해서 단일팀을 만든다면 오히려 전력약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서로간에 훈련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마찰도 있을 수 있구요.
김대통령 평양공항 도착시 사열했던 북한군 의장대의 선발기준을 보면 신장이 175센티미터이상이라고 하더군요. 한국군 의장대의 180센티미터에 비해 5센티가 작은 셈입니다. 운동선수들도 남북한간에 그만큼의 신장차이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권위원:‘이산가족 상봉’을 8월15일 즈음으로 날짜까지 박아 합의한 것이 그만큼 확정적이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아요. 유난스럽게 날짜를 정한 것이 혹 1회성 전시용 행사로 끝내고 말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솟게 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워낙 많이 속아봤으니까요.
‘남북이산가족 찾기’를 처음 합의한 것이 언제입니까. 71년 판문점 회의에서 였으니 근 30년전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85년 가을 돼서야 겨우 남북 이산가족 상호 방문이 성사되었습니다. 남북에서 실향민이 50명씩 평양과 서울을 동시 방문하던 그때도 이산가족들의 한이 다 풀리는 줄 알았지요. 하지만 결국 한번 행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후 89년, 92년에도 남북 고향방문이 논의는 됐지만 성사는 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씩 그런 논의가 나올 때마다 한껏 기대가 부풀다 상처만 받곤 해서 이젠 아예 기대를 안한다고 남가주의 이산가족들도 말을 합니다. 양쪽 정상이 정한 것이니 이번엔 좀 다르겠지요.
미국측 시각
▲옥위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영어로 표현해 MIXED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북한 당사자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정상회담을 갖는다는데에는 아무 이견이 있을 수 없지요.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이 때문에 한미간에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을 보여왔습니다. 미국은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한 전체 동북아시아의 안보전략을 염두에 두고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입장입니다. 한국의 입장은 다르지요. 미국은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열고 한민족 내지 남북한 현안에 무게 중심이 실린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선정해 합의를 이룰 경우 동북아 전략수행에 차질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를 해왔습니다.
▲민위원: 이번 합의문에 북한이 즐겨 쓰는 문구인 ‘자주’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앞으로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물론 미군 철수와 외세 배격이란 뜻으로 썼겠지만 한국 정부는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만 상대하려던 북한이 한국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 문구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고집한다면 미국과 한국 보수층의 반발이 거셀 것입니다.
▲옥위원: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미스터리의 인물로 알려진 김정일의 국제사회 데뷔의 무대가 됐고 이 점에서 김정일은 상당히 점수를 땄다는 게 미언론의 대체적 평가 같습니다. 그러나 ‘파티는 잘 끝났지만 조금 더 두고 보아야 겠다’는 시각입니다. 말하자면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이 정말로 중국같은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한국으로부터 일시적 경제적 협력이나 끌어내 급한 불이나 끄려는 미봉책인지는 앞으로 김정일의 태도를 보면서 판단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대체적으로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 같아요.
안보문제 빠져
▲민위원: 이번 합의문에서 한반도 평화 공존의 관건인 북한 핵개발 문제가 빠져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한국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오면 북한은 틀림없이 주한 미군 철수를 거론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회담 자체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까 우려해 아마 뺀 것 같습니다.
▲옥위원: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직후부터, 또 회담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언론들이 한국관련 기사 보도를 할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은 게 주한미군 문제이고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문제 였지요. 정상회담이 끝나자 바로 지적한 문제도 이 문제입니다. 김정일이 이미지 쇄신에 어느정도 성공하고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미사일방어체제구축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도가 뜨고 있어요. 이도 동북아 전략구상에 차질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민위원: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연방(federation)과 연합(confederation)의 차이가 뭔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질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연방은 한 나라이면서 서로 다른 체제를 갖는 것이고 연합은 나라 자체가 두 개이고 남북 연합 정상회의등 협력기구만 제도화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즉, 연방은 1국가 2체제이고 연합은 2국가 2체제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국민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보는 북한 시각
▲권위원: 같은 정상회담을 두고도 남북 양쪽 국민들의 시각은 전혀 다른 것 같아요. 북한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통일’이더군요. 보도된 평양시민들 반응을 보면 “(김정일) 장군님이 조국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남한 대통령과 만나 합의를 하셨고. 온 인민은 장군님의 결단에 전적으로 따른다”의 분위기인 것 같아요. 반면 남한에서 제일 큰 관심은 뭐니뭐니 해도 이산가족 상봉이지요. 반세기 헤어진 혈육을 만나기 위해 통일도 소원하고 엄청난 경제적 지원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지요. 김대중 대통령도‘이산가족 상봉’하나는 미리 밀약을 받아내고 평양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옥위원: 일부에서는 북한이 추구하는 것은 중국식 모델이라고 봅니다. 김정일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또 천안문 사태등을 철저히 연구 했다는 겁니다. 그런후 자신을 가지고 개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겁니다.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한지 30년이 채 못돼 중국은 시장경제체제 수립에 상당부문 성공했습니다. 북한은 인구에서 중국의 50분의 1도 안됩니다. 국토면적도 70분의 1에 불과 합니다. 개혁개방의 발동이 걸리면 북한이 현재의 중국수준에 이르는데에는 10년이 안걸린다는 전망입니다. 일단 이 수준에 올라오면 남북통일문제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일 수도 있습니다만 남북이 냉전의 틀에서 벗어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박위원: 북한이 남한에 대해 속으로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은 경제협력일 것입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이 현재 경제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진-선봉 경제특구 조차도 전력, 통신, 교통, 도로, 항만시설등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설비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 미주한인 상공인들도 몇차례 다녀왔지만 그같은 이유로 인해 흐지부지 되고만 것으로 압니다. 미국등 외국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문을 두드렸다가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은 민간차원의 경제협력만으로는 어렵고 한국정부 차원의 과감한 경제원조가 있어야 가능한데 현재 한국도 제2의 IMF를 맞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원조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권위원: 이산가족 상봉이 단발로 끝나면 김대중 정부가 앞으로 대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북이야 김정일 결정이면 그게 곧 법이지만 한국은 민주국가이니 국회의 동의도 얻어야 하고 국민의 호응도 받아야 일이 되지요.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가족 상봉이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담당기구를 두고 제도화해야지요. 그런데 남쪽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북쪽이 어느 정도 받아줄 지가 관건입니다. 남쪽에서야 1천만 이산가족이 많이 만날수록, 빨리 만날수록 좋지만 북측에서는 그렇게 문을 열어놓으면 체제가 위협받는다 생각하니 문제이지요. 수십년 폐쇄된 사회에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바람이 너무 갑자기 밀어닥치면 문제가 생기기는 할거예요.
한국 언론 편향 보도
▲민위원: 회담 기간 동안 한국 정부와 언론이 지나치게 김정일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정부에서 각 언론사에 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을 자극하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 한국의 일부 언론으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권위원: 이번 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협상 능력이 입증되고 인기가 수직상승했어요. 하지만 회담을 통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은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지요. 국제무대에 화려한 데뷔를 했다고 할까요.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를 토대로 이번 2박3일의 회담 전체를 영화찍듯 연출하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있더군요. 김대통령 평양방문에 앞서 한국정부가‘김정일을 자극하지 말아달라’고 언론기관에 신신당부했다는데, 김위원장의 능수능란한 처세 탓인지 자극은 커녕 언론들이 너무 감탄 일변도인 감도 없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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