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은행이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현재 7개은행에 지점 50여개, 직원과 딸린 식구까지 더하면 은행 패밀리만 수 천명에 이르는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90년대초 극심한 불경기와 폭동등을 거치면서 한때 위축됐던 한인은행은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주고객인 한인 비즈니스도 오프 라인에서 온라인을 겸하는 것이 추세인 만큼 은행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지점만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대출이나 은행경영에 있어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신사고가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다.
판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가주신탁은행이 부실운영으로 가주조흥은행에 매각됐고 글로발은행이 한미은행에 합병되는가 하면 미주은행은 부실경영으로 은행감독국으로부터 거듭되는 경고를 받으면서 끝내 이름을 나라이름으로 바꿔 새로 태어났고, 97년까지 부동의선두를 지켜왔던 구 가주외환은행(퍼시픽 유니온뱅크)가 공격적인 경영의 현지자본의 한미은행에 선두자리를 내줬다.
지난 2월 나라은행이 뉴욕제일은행을 인수하고 퍼시픽 유니온 뱅크, 윌셔, 중앙은행등도 타주에 대출사무소를 여는등 미전역을 대상으로 한 은행들의 확장경영도 치열하다. 이 가운데 윌셔은행이 지난 4월 본격적으로 인터넷뱅킹을 실시함으로써 은행들간에 테크놀러지 뱅킹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가주외환은행도 퍼시픽 유니온뱅크로 이름을 바꾸고 뉴욕증시에 상장을 시도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의 일환으로 증권, 보험서비스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올 한해동안 최소 1∼2개의 지점을 남가주는 물론 미전역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올 연말에는 미래은행으로 명명된 또 하나의 한인은행이 다운타운에 본점을 연다.
한인은행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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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비롯한 테크놀러지의 발전으로 지난 10년을 훨씬 능가하는 혁명적인 변화가 한인은행들에게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한인은행들이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언제까지 한인들만을 주고객으로 할 것인가?
▲은행이 보험,증권업무에 진출할 수 있고 반대로 증권,보험사가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규제가 철폐되는 금융개혁법이 실시되는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인터넷뱅킹이 출현하는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테크놀러지 뱅킹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합병으로 은행의 확장과 내실을 기할 것인가? 경쟁에서 도태돼 인수당할 것인가?
▲미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고객을 남가주지역에서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상은 한인은행 관계자 스스로 지적하는 2000년대 한인은행의 과제다.
그 어느때보다 철저한 경제논리에 의거한 합리적인 경영이 따르지않을 경우 문을 닫는 은행이 생겨날 것으로 보이며 생존과 발전을 위한 은행간의 인수합병도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인은행,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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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외환은행(Korea Exchange Bank of California)이 지난 74년 9월 24일 남가주 최초의 한인은행으로 직원 20명, 자본금 300만달러의 현지법인으로 다운타운 1133 Wilshire Bl에 처음 문을 열었다.
초대행장은 현재 실리콘밸리의 아시아나은행장으로 있는 정원훈씨. 가주외은의 설립으로 이민 1세들이 대출과 예금등 금융서비스를 한인은행을 통해서 받을 수 있게 됐으며 다수의 한인은행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7년 8월10일 은행명칭을 California Korea Bank로 변경했고 이후 올림픽, 샌프란시스코, 웨스턴 지점이 개점됐으며 자본금도 77년 9월 500만달러, 79년 6월에 1,000만달러로 증자됐다.
80년대 접어들면서 순수한 동포자본으로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한인타운에 문을 열었다. 윌셔은행이 80년 12월30일 처음 문을 열었고, 한미은행에 합병됨으로써 지금은 사라진 글로발은행이 81년 8월10일, 한미가 82년 12월15일, 중앙이 86년 3월18일 문을 열었다. 88년 10월에는 현 가주조흥은행으로 바뀐 가주 서울신탁은행이 창립됐으며 89년 6월16일에는 나라은행으로 바뀐 미주은행이 문을 여는 등 은행창립이 러시를 이뤘다.
90년대에 들어와서도 은행창립 열풍은 계속 됐다. 91년 6월 12일 새한은행이 문을 연데 이어 캘리포니아 조흥은행이 95년 3월 16일 새로 문을 열었다.
90년대 초반의 불경기와 LA폭동으로 은행의 성장이 한때 크게 위축됐으며 91년 11월에는 오렌지카운티의 한인소유 델타 세이빙스가 정부관리로 넘어가기도 했다.
한미은행은 92년부터 글로발은행과의 합병을 추진해 불경기등 외부요인으로 한때 주춤했다가 98년에 최종적으로 성사시켰다. 한미은행은 글로발 은행과의 합병으로 세리토스 및 하시엔다 지점을 확보하는등 은행성장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94년 5월에는 가주서울신탁은행이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부실대출의 증가로 인한 경영악화로 끝내 매각됐다.
미주은행은 90년대초 이사회와 경영진간의 마찰로 한때 은행이 감독국관리로 넘어갈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94년 1월 나라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벤자민 홍 은행장을 새로 영입하면서 자본증자에 성공해 은행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90년대 후반에 미경기가 활성화되면서 한인은행들은 재도약의 발판을 LA다운타운 지점증설을 통해 마련됐다. 한미와 중앙은행은 이미 86년과 90년 이곳에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가주외환, 윌셔, 새한, 나라은행등도 다운타운에 지점을 개설해 수익성을 높이는데 성공함으로써 한때 올림픽가의 은행 경쟁이 다운타운쪽으로 옮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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