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세명의 빌리 버드를 목격한 바 있다. 한명은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가 시즌 피날레로 지난 주말 무대에 올린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빌리 버드’에서 노래하는 빌리 버드였고 또 다른 한명은 어제까지 뉴아트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좋은 일’에 나온 외인부대 병사 빌리 버드(작폼속 이름은 상탕)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1962년에 나온 흑백 드라마의 주인공 빌리 버드다.
허만 멜빌의 사후 발표된 짧은 소설 ‘빌리 버드, 앞돛대 망꾼’(Billy Bud, Foretopman)의 때는 1797년. 주인공 빌리 버드는 영국 전함 ‘인도미타블’의 선원이다. 빌리는 고아 태생으로 건강하고 잘 생겼는데 착한 마음에 근면해 동료 선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빌리의 인간됨은 오페라에서 그를 증오하는 선임 위병하사관 클래가트(베이스 제트리 웰즈가 카리스마 있는 연기에 노래도 잘 한다)가 ‘오 아름다운 남자여, 오 핸섬한 남자여, 착한 남자여, 나는 빌리 버드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남자를 결코 만나볼 수 없었으리’라고 노래하는 아리아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선원들간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인 빌리는 아무 까닭 없이 클래가트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클래가트는 빌리에게 선상반란 혐의를 뒤집어씌워 빌리는 선장 비어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비어의 추궁에 너무나 억울해 말문을 못 여는 빌리는 격한 감정에 클래가트를 때려죽이고 자신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빌리 버드의 이야기는 선과 악에 관한 도덕적 우화이자 철학적이요 성경의 내용을 상징하는 윤리극이다. 빌리는 선과 순수와 순진을 상징하며 클래가트는 악을 상징한다. 빌리는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이자 예수로 타고난 선이요 클래가트는 타고난 악 사탄이라 할 수 있다.
‘빌리 버드’는 개인의 집단에 의한 희생에 관한 이야기요 도덕적 올바름 대 법적 정의의 상충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빌리는 지선이어서 악을 못 봐 결국 그 악에 의해 파멸되고 만다. 빌리를 증오하는 것은 악의 선에 대한 무조건 거부반응인데 오페라에서의 클래가트는 선원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자로 냉소와 위트마저 지닌 사악한 인간이어서 마치 메피스토펠레스를 보는 것 같다.
빌리 버드의 이야기는 그 내용이 다분히 철학적인 도덕극이어서 영화로 보다는 오페라로 감상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1951년에 만든 오페라 ‘빌리 버드’는 브리튼의 여러 오페라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
모두 남자들만 나오는 이 오페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대결을 긴장감 있게 그렸다. 화려한 의상과 감미로운 멜로디가 있는 고전적 오페라에만 익숙한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지 모르겠으나 색서폰 등 개별 악기의 라이트 모티브 구실과 서로 다른 노래음과 반주음 그리고 현대적 색채가 가미됐으면서도 지나치게 생경하지 않은 음악 등이 무척 흥미 있는 작품이다.
튼튼한 상반신을 드러낸 LA 무대의 단골 바리톤 로드니 길프리가 빌리 버드역을 맡아 좋은 노래와 연기를 했는데 푸른 조명 속에 가혹하게 서있는 돛대(사진)가 예수가 매어 달린 십자가의 의미를 내뿜으며 시선을 끈다. 돛대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한 빌리는 죽으면서도 선장 비어를 원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에게 그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는데 이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자기를 처형한 자들을 용서하는 사랑과 선의 제스처라 하겠다.
이번 오페라는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가 창단된 이래 지금까지 지난 16년간 총감독으로 있으면서 이 오페라단을 미국의 유수한 단체의 하나로 성장시킨 피터 헤밍스의 LA 무대 마지막 작품이어서 더욱 뜻깊다. 그는 ‘빌리 버드’를 마지막으로 고향 영국으로 돌아간다.‘빌리 버드’는 9, 11, 14일(이상 하오 7시30분)과 7일(하오 2시) 4회 공연이 더 있다.
피터 유스티노프가 제작, 감독, 공동 각색하고 비어 선장으로 나온 62년작 영화‘빌리 버드’는 빌리역의 테렌스 스탬프와 클래가트역의 로버트 라이언 및 빌리를 아끼는 나이 먹은 선원 댄스커역의 멜빈 더글러스 등 명연기파들의 힘찬 연기와 촬영이 뛰어난 좋은 드라마다. 영화가 다소 지나치게 엄격한 게 흠인데 이에 비하면 같은 내용을 프랑스 외인부대원들의 이야기로 해석한 프랑스의 여류 감독 클레어 드니의 ‘좋은 일’(Beau Travai l)이 훨씬 우수한 작품이다. ‘빌리 버드’의 이야기는 악을 끊임없이 경계하라는 경고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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