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에게 매력 어필 일본 기업들
▶ 팬데믹으로 불확실성 경험한 MZ
▶ 커리어 쌓기 위해 다양한 도전들
▶ 퇴사 이직 ‘메뚜기 직장생활’ 늘며
▶ 도산 위기까지… 경영 과제 급부상
“어렵게 키운 인재 오래 다니게 해야”
신입사원 타는 특급열차 편성 등
입사식부터 애사심 고취 공들여
“구시대 전근 제도 개선” 목소리도일본 4대 종합상사(미쓰비시·이토추·미쓰이붓산·스미토모)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는 지난달 1일 도쿄 미나토구 사옥에 후쿠시마현에서 가져온 벚꽃 650그루를 깔았다. 이날 입사한 신입사원 153명을 환영한다는 뜻에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시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가장 피해가 컸던 후쿠시마 지역의 나무를 가져와 의미를 더했다.
입사식을 벚꽃으로 장식한 건 '4월 벚꽃'의 의미가 남달라서다. 일본에서 4월은 회계연도 기준으로 새해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 달이다. 벚꽃이 만개해 전국 각지에서 꽃놀이하며 따뜻한 봄기운을 만끽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벚꽃 입사식엔 사회 문턱을 넘어선 신입사원들의 앞길이 벚꽃처럼 화려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
이 회사가 준비한 건 벚꽃만이 아니다. 신입사원들이 식장으로 들어오는 통로에 레드카펫을 깔아 '이 회사의 주인공은 여러분'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레드카펫 주변에는 간부는 물론 과장급 이상 직원 500여 명이 선 채 신입사원들 입장에 맞춰 손뼉을 쳤다. 인기 포크송 듀오 '유즈'의 공연이 이어졌고, 신입사원 부모가 이 모습을 온라인 생중계로 볼 수 있게 했다.
이토추상사는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1순위로 꼽히는 대기업이다. △오후 8시 이후 야근 금지 △회식은 1차로 오후 10시 내 종료 △사내 어린이집 확대 시행 등 대기업 중에서도 유독 복지가 좋기로 소문나서다. 이토추상사가 입사식에 특별히 공을 들인 건 퇴사를 생각하는 젊은 직원들을 붙잡아두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이 회사의 오카후지 마사히로 회장은 "요즘 신입사원들이 쉽게 회사를 그만둔다. 사원은 회사 성장의 원동력이니 참고 견디며 회사와 함께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좋겠다"며 특별한 입사식을 준비한 배경을 설명했다.
▲퇴사 대행 의뢰 대부분 입사 1년 미만 신입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퇴사 문제는 기업들의 최대 고민거리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육성해 놓은 인재들이 줄줄이 회사를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1년 3월에 고교·대학을 졸업해 입사한 직장인 중 고졸 입사자의 38.4%, 대졸 입사자의 34.9%가 3년 이내 처음 입사한 회사를 떠났다. 대졸자의 경우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0년 3월 졸업자와 비교하면 고졸·대졸자 각각 1.4%포인트, 2.6%포인트 상승했다.
퇴사하는 젊은 회사원이 늘다 보니 이들을 겨냥한 '퇴사 대행 서비스'라는 신종 산업도 생겼다. 대행업체가 의뢰자를 대신해 회사에 사표를 내주는 서비스다. 퇴사 절차를 모두 처리해 주기 때문에 옛 동료들과의 어색한 인사 없이 회사를 나올 수 있다.
퇴직 대행업체 알바트로스는 입사식이 일제히 열린 지난달 1일 하루에만 총 134건의 의뢰를 받았다. 지난해 4월 1일 의뢰 건수의 두 배 수준이다. 알바트로스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이직자를 포함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많이 의뢰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알바트로스 퇴사 대행 서비스 이용자는 1만6,205명으로 전년 대비 3.7배 증가했다. 전체의 약 60%가 20대였고, 이 중 대부분은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신입사원이었다.
일본 MZ세대는 어째서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걸까. 취업 정보 업체 리쿠르트가 지난달 입사해 업무를 시작한 신입사원 1,600명에게 '지금 입사한 회사에 몇 년간 일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약 37%가 "10년 미만"이라고 답했다. '10년 이상', '정년까지'라고 답한 비율은 합쳐도 약 31%밖에 되지 않았다. '모르겠다'(약 31%)와 같았다.
구리타 다카아키 인디드리쿠르트파트너스리서치센터 수석주임연구원은 NHK방송에 "(MZ세대는) 코로나19 사태로 높은 불확실성을 경험한 세대"라며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 출세하는 단편적인 행복을 바라지 않게 됐고, 자신의 커리어를 다양하게 쌓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과거와 달리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면 주저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MZ세대의 직장 개념이 된 셈이다.
MZ세대들의 '메뚜기 직장 생활'은 기업에 적잖은 타격이다. 시장조사 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종업원 퇴사로 도산한 기업은 87개로 역대 최다였다. 10년 전인 2014년(20개)의 4배 이상이 됐다. 닛케이는 "기업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구인난에 젊은 직원들의 이직과 퇴사를 막는 게 중요한 경영 과제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신입과 미니카 만드는 사장, 후배 화장해주는 선배그래서 일본 기업들은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라는 인식을 신입사원들에게 심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이토추상사처럼 회사와의 상견례 자리인 입사식이 추억에 남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초반에 애사심과 동기애를 갖게 하려는 취지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들을 위해 이런 이벤트까지 준비한다'는 입소문도 고려했다.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본사를 둔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재팬은 입사식 날 미니카 대회를 열었다. 약 70명의 신입사원이 팀을 나눠 미니카를 직접 제작하게 했다. 미니카 부품은 사장과 게임을 통해 얻게 했다. 동기끼리 우정을 쌓는 시간인 동시에 보쉬 직원이라는 결속력을 다지자는 취지다.
신입사원 다마다 요이치로는 아사히신문에 "고민이 생기면 동기들에게 편하게 상담할 수 있을 것 같다. 입사식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치야마 치나미 인사부 채용 담당 매니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이직률을 줄여보고자 기획한 행사라며 "입사 첫날부터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동기 간 유대감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철도·부동산 업체인 세이부그룹은 지난달 1일 신입사원들을 위한 특급열차 '신입사원호'를 편성했다.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입사식 장소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역까지 운행한 열차로, 오직 약 210명의 신입사원만 탈 수 있었다.
화장품·건강식품 업체 판켈은 입사 2~5년차 선배들이 입사식에 참석해 신입사원들에게 직접 호감도를 올려주는 화장을 해줬다. 선배와 후배가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기회로 지난해부터 마련한 행사다. 식품 업체 큐피는 도쿄 조후시에 있는 견학 시설에서 입사식을 열었다. 신입사원들이 자사 대표 제품인 마요네즈를 직접 만들며 새해 첫날 자사 제품에 대해 동기들과 함께 토론하고 고민해 보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커리어 관리 중시하는 MZ, 전근 거부경영계에선 지역 전근 제도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리쿠르트 산하 리쿠르트웍스연구소가 지난해 미국, 유럽, 아시아 7개 국가를 대상으로 '본인 동의 없이 근무지가 바뀐 적이 있는가'를 조사한 결과, 일본은 24%로 7개 국가 중 비율이 가장 높았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11.7%, 5.8%였다.
하지만 MZ세대는 회사의 지침을 받아들이는 기성세대와 달리 전근이 문제라며 이를 거부한다. 자신이 원하는 업무 경력을 쌓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데다 낯선 환경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두려움에 '전근할 바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사표를 내는 것이다.
취업 정보 업체 앤재팬이 지난해 4월 2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갑작스러운 전근이 퇴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가'라고 묻자, 응답자의 약 6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약 31%는 '전근 때문에 퇴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후루야 쇼타 리쿠르트웍스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마이니치신문에 "전근 거부 현상 확산은 (MZ세대 직원의) 이기심이나 인내심이 줄어 생긴 문제가 아니다"라며 "종이 한 장으로 근무지를 바꿔 경력 관리를 못하게 하는 고용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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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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