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전쟁’ 속 정부 역할
▶ 환율 왜곡·만성적자 해법 찾는 미
▶ 제조업 부활 위한 ‘보호무역’ 강행
▶ 경제·군 동원 새 글로벌 규칙 모색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사인한 후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물가·금리상승 등 부정적 견해에도
이자·만기 없는 ‘무이자 영구채’등
한과 협상에 관세 밀어붙일 가능성
대선 후 새 정부 미와 협상시한 촉박
정책 연속성 위한 긴밀한 협력 필수
‘총리 부재’ 가능성은 협상에 부담도대체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이어진 미국발 관세 폭풍을 지켜보며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전 세계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다른 나라도 아닌 전 세계 초강대국이 이런 방식으로 시장을 흔드니 각국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가 처한 위험은 훨씬 크다.
▲글로벌 분업 구조 재편 꾀하는 미국먼저 미국 내 관세 강경론자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군사 안보와 금융 시스템을 통해 세계 평화와 번영을 떠받쳐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국민은 전 세계 안보를 위해 군을 파견해왔고, 이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감내해왔다. 또한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으면서 환율 왜곡과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발생했고, 이는 결국 미국 제조업의 붕괴와 노동자 계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미국의 힘으로 유지된 안보와 경제 시스템이 되레 미국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대표 인물로는 스티븐 미란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과 피터 나바로 전 무역·제조업 담당 선임고문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서,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무역 체제와 달러 패권 구조가 미국의 제조업 약화, 무역적자 확대,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고 보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총동원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다시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이들 강경파는 미국이 ‘세계의 공장’이 아닌 ‘본사’ 역할만 하게 된 글로벌 분업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첨단산업뿐 아니라 전통 제조업에서도 자립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관세 인상, 수입 규제,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의 미국 복귀), 해외 기업의 생산 시설 유치 등 공격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물가 상승이나 공급망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군사 전략에도 반영된다. 이들은 동맹국이 미국의 군사력과 시장 접근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만큼, 미국의 경제적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동맹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무이자 영구채로 전환하거나,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도록 요구하는 식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 관세 인상, 군사 지원 축소, 외교적 불이익 등 다양한 수단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동맹관계조차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재설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빚 줄이고 산업 살리는 ‘일석이조’ 노림수이 중에서도 ‘무이자 영구채’ 전략은 단연 화룡점정이다. 이 채권은 이자도 없고 만기도 없어 원금 회수조차 불가능하다. 각국 정부가 보유한 채권은 통상적으로 유통이 가능해야 하지만, 이러한 조건의 채권은 시장에서 구매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자도 없고 만기도 무한이기 때문에 채권을 사서 수익을 얻을 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돈을 빌려주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를 강제하려 한다면, 이는 일종의 ‘경제적 보호비’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 이토록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하려 할까. 이는 달러 패권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은 미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전 세계 국가들이 안전자산이자 거래 수단으로 달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축통화 차원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달러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해외 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해외시장에서 판매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입 제품 가격은 낮아져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고, 결과적으로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 무역적자가 확대된다.
다시 말해 미국 제조업을 살리려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야 하고,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야 한다. 이러한 약달러 정책은 무역수지 개선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에는 부정적이다. 기축통화란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신뢰받는 통화여야 하는데, 달러에 대한 수요가 줄면 그 지위 역시 위태로워진다. 강경파들은 무이자 영구채 등 강제적인 달러 수요 창출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강제로 채권을 인수시켜 달러 수요를 발생시킨다. 과거 발행한 국채조차 이자와 원금 상환 없이 넘어가는 방식이 가능해진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빚을 줄이고 산업도 살리는’ 꿈같은 시나리오가 된다.
▲허황된 발상이지만 최악 시나리오 대비해야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을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발상으로 본다. 우선, 관세 인상은 수입 물가를 상승시켜 국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금리 인하가 어려워진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며, 이는 오히려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무역적자가 늘어나게 된다. 또한 이에 따른 임금 상승과 현재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상황은 제조업 유치에 장애가 된다. 인건비가 높아 경쟁력 있는 수출 단가를 만들기 어렵고, 일할 사람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반론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한국이 이 상황을 ‘비현실적’이라고만 치부하고 안심할 수는 없다. 미국이 실제로 강경하게 관세를 밀어붙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신속한 관세 협상 후 기존 체제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이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자국 내 투자 유치 등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설령 동맹국과의 신뢰가 훼손되더라도, 달러를 대체할 현실적인 기축통화가 없다는 점에서 이전의 무역체제는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미국만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시나리오만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 경제가 침체 없이 유지되고, 국민들이 관세 정책에 지지를 보낸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이보다 유리한 협상 카드도 없다. 영구채 발행을 통해 부채 부담까지 덜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 입장에서 이런 부정적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세 협상, 연속성과 전략적 일관성 확보해야미국이 선택지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와 정당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6월 4일 신임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예상되며, 이후 통상 특사단이 미국에 파견될 가능성도 높다. 미국이 설정한 관세 협상 마감 시한인 7월 초까지 협상을 신속하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다. 이러한 전환 과정 속에서 통상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협상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중대한 국면에서 총리 부재 가능성은 정부의 협상력과 역할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경우 당장의 협상뿐 아니라, 대선 이후 협상 주체가 될 차기 정부와의 통상 정책 조율도 병행해야 하는 과제까지 있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 속에서도 미리 정보를 공유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관세 협상의 연속성과 전략적 일관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로 낮췄다. 경기가 예상보다 더 어렵다는 방증이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0.2% 역성장했다. 고령화로 인한 내수 위축에 관세 충격까지 겹치면 하반기 경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 수출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은 공급망 피해가 뻔히 예측되는 분야다. 중국이 미국 수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제3국 시장에 더 싸게 물량을 밀어낼 가능성도 있다. 한국 수출기업에 피해다. 이 모든 위기를 관리할 정부의 역할은 지금이 가장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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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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