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나는 마리안느 (Marianne)로 영어이름을 택했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한국이름 ‘향남’은 중간이름이 되었다. 아들을 원하던 아버지가 돌림자인 ‘향’에다가 사내 ‘남’을 붙여 내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어렸을때는 여자아이의 이름에 사내냄새가 나는 듯하여 싫었고 늘 챵피했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아들을 봐야 대를 끊기지 않는다는 사명감 또는 지극히 당연한 관습은 꼭 우리들의 풍습만은 아닌듯하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나 영화를 좋아했는데, 영국의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과 소작농들, 그리고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은 지난날의 한국과 흡사하여 놀랍다.
18세기 영국의 윌리암 카벤디쉬(William Cavendish), 5대 드본셔 공작(Duke of Devonshire)은 여식을 가진 여러 가문에서 눈독을 들인 미혼남성이었다. 그리고, 17세의 조지아나 스펜서(Georgiana Spencer)는 명문가인 존 스펜서 1대 백작(John 1st Earl Spencer) 집안의 장녀였는데, 이 두사람은 정략(?) 결혼을 하게되고 조지아나는 드본셔 공작부인 (Duchess of Devonshire)의 타이틀을 얻게된다.
윌리암은 결혼전에 수많은 여자들과 교제를 했었고, 혼외자식까지 두었었는데 조지아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채 결혼을 했다. 윌리암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도 않고 부인에게 살갑지도 않은 무뚝뚝한 남편이었는데, 반면 무척 사교적이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활달한 성격의 조지아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그녀의 결혼생활은 따분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베스(Bath - 유럽의 위대한 로마식 스파타운으로 알려져, 해마다 6백만명의 여행객들이 몰리는 도시)의 휴양지에서 조지아나는 엘리자베스(Lady Elizabeth)를 만나 친분을 쌓게된다. 엘리자베스는 아들만 셋을 두었으나 남편과 별거중이었고 그로인해 아이들과도 헤어져 사는 마땅히 갈 곳도 없는 딱한 형편이었다. 엘리자베스와 급속히 가까워진 조지아나는 윌리암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엘리자베스를 당분간 그들의 저택으로 데리고와 함께 지내게 된다.
윌리암이 그리도 원하는 아들을 낳지못한채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혼외자식인 딸, 그리고 자신이 낳은 두 딸을 키우던 조지아나는 어느날 남편과 엘리자베스의 불륜관계를 알고 격분하며 윌리암과 엘리자베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엘리자베스는 윌리암이 권력있는 사람이라서 떨어져사는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기위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변명을 했다. 그후, 엘리자베스의 아들들이 저택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되는데, 조지아나는 윌리암이 엘리자베스의 아들들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딸들을 대하는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분노를 느끼고 남편에게도 항의를 하면서 당장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아들들을 집에서 내보내라고 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했다.
불편한 삼각관계가 지속되던 중, 남편이 그렇게 원하던 아들을 낳은 조지아나는 남편에게 자신도 연인을 만나며 살겠다고 선언을 하고, 결혼전에 알고 지냈던 그리고 언젠가 영국수상이 되겠다던 챨스 그레이(Charles Grey)를 사교장에서 다시 만나게된다. 위그 당(Whig Party 훗날 Liberal Party) 지도자격이던 챨스는 조지아나에게 자신의 선거유세에 합류해달라고 했고 공작부인이 선거유세에 나오니 군중들은 열광을 하고 조지아나는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잠시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
집과 아이들을 떠나 연인인 챨스와 베스(Bath)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조지아나를 윌리암이 찾아와 설득을 하지만,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조지아나에게 남편은 아이들이 쓴 편지를 놓고 갔다. 아이들의 편지를 읽던 조지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돌아갈 곳은 역시 집과 아이들 곁이라고 결심을 하고 챨스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그러나, 조지아나는 챨스의 아이를 임신중이었고, 윌리암은 조지아나가 소리소문없이 몰래 아이를 낳을 수있도록 멀리 보내는데 엘리자베스가 자진해서 동행을 하여 그녀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조지아나가 낳은 챨스 그레이의 딸, 엘라이자 코트니(Eliza Courtney)는 윌리암의 주선하에 챨스의 아버지인 그레이 장군에게 보내버린다. 윌리암, 조지아나,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삼각관계의 생활패턴은 1806년 3월 조지아나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조지아나의 축복하에 엘리자베스는 윌리암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다.
아만다 포먼의 책, ‘조지아나, 드본셔 공작부인’(Georgiana, Duchess of Devonshire)의 원작은 ‘The Duchess’의 타이틀로2008년도에 영화화 되었는데, 위의 스토리라인은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200여년이 지난 후, 스펜서 백작의 8대 후손인 존 스펜서의 딸, 19살의 다이아나 스펜서는 당대의 가장 손꼽히는 미혼남성으로 온 세계의 여성들이 열망하던 영국의 황태자 챨스와 약혼을 하고 미디어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쫒게된다. 원래, 챨스는 다이아나의 언니 사라(Sarah)와 사귀었던 사이인데, 16살의 다이아나와 사라가 챨스의 폴로 경기에 참관을 했던 때부터 챨스는 다이아나가 자신의 신부감이라고 점을 찍었다는 일설이 있다. 허나, 챨스는 이미 카밀라(Camilla)라는 여성과 깊은 교제를 하는 중이었고 카밀라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음에도 챨스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고 다이아나에게 접근하여 아주 교활하게 친구행세를 했는데, 훗날 챨스와 결혼을 했고 2022년 9월 그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그리도 염원하던 ‘왕비’ (Queen Consort) 이 되었다.
황태자 챨스와 이혼후, 조지아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남성들과 자유롭게 교제를 이어가던 다이아나가 교통사고로 파리에서 사망한지 어느덧 28년째로 접어든다. 두사람의 이혼이 마무리되기 전에, 다이아나는 영국황실의 의례를 무시한 채 챨스와의 결혼생활중 겪었던 많은 일들을 언론에 누설했는데, ‘챨스와의 결혼 생활에는 늘 세사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라고 했던 말은 각종 미디아 타이틀로 자주 인용이 되었는데, 영화 ‘The Duchess’ 홍보 포스터에도 ‘그녀의 결혼 생활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를 인용했다고 한다.
조지아나와 다이아나는 인척관계로 존 스펜서 2대 백작(John 2nd Earl Spencer)은 다이아나의 고조부이고, 조지아나의 남동생이다. 또한, 조지아나의 연인이었던 챨스 그레이는 그가 염원한대로 1830년 11월부터 1834년 7월까지 영국 수상직을 역임하게 되고 백작(Earl) 의 작위를 받는다. 영국의 유명한 얼 그레이(Earl Grey) 차는 챨스 얼 그레이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가한 시간에 얼 그레이 차를 즐기고 있다면, 시대는 달랐지만 놀랍게도 비슷한 삶을 겪은 조지아나와 다이아나를 한번쯤 떠올려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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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남 (전) 연방사회보장국 공보부 선임 홍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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