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에 미국 유학 길에 올랐으니 어느듯 미국에서 살아온지 금년으로 56년째를 맞는다. 한국에서 32년을 살고 나머지 세월은 미국에서 산 셈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이 다 될 만큼 긴 세월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미국문화를 깊고 넓게 이해하기에는 아직 먼 것 같다.
산업발달과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지극히 존중하는 개인중심 미국문화속에서 가끔 집단중심 사회현상들을 보면서 얼마나 더 살아야 이 나라를 이해할 수 있을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문화는 개인중심 속에서 집단중심이 살아있는 문화라고나 할까?
한편 농경사회의 발달로 품앗이 두레와 같은 집단중심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왔던 한국 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치열한 경쟁속에서 ‘나'의 일등의식이 만연한 개인중심 사회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너무나 미국문화화 돼가지 않나 하는 기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날 집단중심 사회의 미풍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개인중심 문화가 세월이 흐르면서 옛 집단중심 문화의 장점들을 점차적으로 되찾아가려는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중심 문화는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우리'보다 ‘나'를 앞세워 개인이익을 우선한다. ‘우리'가 일등하는 것보다 ‘내'가 일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개인중심문화는 100미터 육상경기라면 집단중심문화는 축구경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개인중심적 현상은 언어가운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사람들은 집단중심적 표현인 우리 조국(our country) 대신 개인중심적 표현인 나의 조국(my country)이라는 말을 쓴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개인중심적인 ‘나' 대신 ‘우리'라는 집단중심적인 표현을 사용하고있다. 나의 조국 대신 우리 조국이라고 말한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30여년간 가르치면서 미국 개인주의 문화속에서도 집단주의가 함께 존립하는 경우를 강의실에서 체득했다. 미국 대학 특히 대학원 과정의 강의는 토론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특히 교실 토론에서 학생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팀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의견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통해 여러 팀사이에 교환하는 팀 토론(team discussion)방식의 강의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사회에서 어떻게 집단주의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지를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40명쯤으로 구성된 교실 학생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8명이 한 팀이 되게 하여 모두 5팀을 구성하고 각 팀은 투표로 팀장을 선출한다. 팀장은 팀 토론을 주제하며 팀을 대표한다. 나는 토론의 주제에 대해 대략 설명을 한 뒤, 5개 팀이 각각 모여 주제를 놓고 한 30분간 토론 한 후 각 팀장들이 돌아가며 자기 팀의 결론을 발표한다. 각 팀의 발표가 끝난 후 전체학생들이 무기명 투표로 순위를 결정한다.
1등 팀은 A+, 2등 팀은 A, 3등 팀은 A-, 4등 팀은 B+, 5등 팀은 B점수 등을 받는다. 팀 구성원 8명이 모두 같은 점수를 받는다. 즉 ‘내'가 아니라 ‘우리'가 공동으로 같은 점수를 받는다. ‘나' 개인중심에서 ‘우리'가 협력하여 이루는 집단중심의 장점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한동대에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1년간 학부 과목 사회학 문화인류학과 법률대학원 과목 형사정책을 가르치면서 팀 토론 강의 방식을 사용했다.
2000년 첫 학기에 이 방식을 소개했을 때 어려움에 부딪쳤다. 몇몇 학생이 팀원 전체가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은 팀 멤버사이에 실력의 차이가 있는 것을 감안하지 않음으로 공평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우리'가 아니라 ‘내'가 일등을 해야 한다는 개인주의 문화로 볼 때 맞는 말이다.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문화는 품앗이 두레와 같은 ‘우리'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공통체 중심의 아름다운 풍속이 ‘나' 중심의 개인주의 미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 홀로의 일등의식이 압도하고 있다는 현실을 설명했다.
아름다운 사회는 이 두 문화가 잘 조화를 형성 할 때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파한 것이다. 그 후 팀 토론 강의는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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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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