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명소 금문교. 다리 아래쪽에 자살 방지를 위한 그물이 수평으로 설치돼 있다. [샌프란시스코=이서희 특파원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찾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겨우 다리 위치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금문교는 지역민들에게는 안개 낀 모습이 더 자연스러울 만큼 안개 속에 숨는 날(연평균 108일)이 많다. 태평양의 습한 공기가 차가운 캘리포니아 해류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개가 조금씩 걷혀가던 오전 11시쯤, 조깅을 하러 나왔다는 한 샌프란시스코 시민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울해지기 쉬운 날씨예요. 여기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죠.”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금문교는 폭 1.6km의 골든게이트해협을 가로지르는 왕복 6차선의 현수교다. 총 길이 2.74km, 너비 27.4m, 다리 높이는 227.4m에 이른다. 1937년 준공 당시 금문교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였다. 이 기록은 각각 1964년과 1998년 깨지긴 했지만, 아직도 대표적인 현수교를 꼽을 때는 이 다리를 그리는 이들이 많다.
최저 7.25달러(약 9,700원)의 적잖은 통행료에도 매일 평균 8만8,000여 대의 차량이 이 다리를 지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여행가이드 시리즈 중 하나인 ‘프로머’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힌 다리”라고 금문교를 설명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도 금문교는 미국의 상징처럼 등장했다.
금문교에는 그러나 아름답고 영예로운 수식어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인들이 이 다리를 이르는 다른 이름은 이른바 ‘자살 다리’다.
지난 87년 동안 금문교에서 떨어져 숨진 사람의 수는 확인된 것만 1,800여 명. 해수면부터 다리까지는 아파트 25층 높이 정도인 75m에 이른다. 투신 시 약 5%만이 해수면과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에서도 살아남지만 그들 대부분도 익사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지금껏 금문교에서 자살 시도를 하고도 목숨을 잃지 않은 사람은 약 40명뿐이다.
사람 죽는 다리라는 오명을 벗고자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그간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몇 해 전 △다리 양옆에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그물 모양 벽을 설치했고 △구조팀과 바로 연결되는 핫라인 전화기를 곳곳에 배치했으며 △자살 방지와 구조를 임무로 하는 경찰과 소방관도 20명 넘게 상주시켰다. 그럼에도 투신 시도는 줄지 않고 이어졌다.
적어도 이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이들이 더는 없게 하기 위해 금문교 측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다리 상판 6m 아래에 자살 방지 그물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시는 10년 전 금문교에 그물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공사는 2018년 시작됐다. 그리고 착공한 지 약 5년 만인 올해 1월 마침내 설치가 완료됐다.
“아름다운 경관보다 안전이 우선”
투신 자녀 부모들이 자살방지책 촉구
반대 딛고 다리 상판 6m 아래 그물
착공 5년 만에 올해 1월 설치 완료
▲눈에 안 띄도록… 철골과 수평으로 설치
최근 찾은 금문교에서 자살 방지용 그물 설치 여부를 바로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물이 있다는 사실은 다리 시작점에 이르러서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물이 금문교를 떠받치고 있는 기존 철골과 겹쳐 보이게끔 설치됐기 때문이다. 파올로 코술리치-슈워츠 금문교 대변인은 이것이 의도된 디자인이라고 한국일보에 설명했다. 그는 “그물의 디자인은 자살을 줄이는 데 입증된 효과와 더불어 미니멀한 미학을 고려해 선택됐다”며 “수평형 그물 디자인은 다리를 건너는 운전자나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에게 보이지 않으며 다리의 상징적인 관점(방문객들이 금문교를 보기 위해 주로 찾는 뷰포인트)에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다리 위에서는 양 끝 쪽에 바짝 붙어 아래쪽을 봐야만 그물을 찾을 수 있었다. 차선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설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물 설치에 반대했던 이들의 가장 큰 우려가 그물이 세계적 명소의 미관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금문교에 자살 방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금문교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이들의 부모들은 브리지레일재단을 설립하고 자살 방지책 마련을 목표로 한 조직적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주도한 이는 금문교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케빈 하인스와 그의 부친이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하인스는 19세이던 2000년 자살을 기도했다. 하지만 “해수면에 부딪혀 등뼈가 부서진 순간 뛰어내린 것을 후회했다”고 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하인스는 “그물이 있었다면 나는 경찰에게 (투신 시도를) 제지당했을 것이고, 즉시 필요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살을 100% 막을 순 없지만 생각할 기회와 구조 가능성 커”
실제로 작년 투신 시도 절반 감소
철골과 수평 설치, 미관도 보존
당초 재단의 요구는 다리 양끝에 높은 난간을 설치해달라는 것이었다. 시당국은 물리적인 자살 방지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난간 설치의 경우 미관을 손상한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아 추진이 쉽지 않았다.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한 건축회사가 “다리 아래에 그물을 설치해 자살 예방에 성공한 스위스 베른 사례가 있다”며 그물을 대안으로 추천했다.
시 당국은 추가 조사 결과 그물을 설치하는 것이 실제적인 자살 예방 효과를 내면서 미관을 덜 해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14년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매년 금문교에서 사망하는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코술리치-슈워츠 대변인은 말했다.
독일에서 왔다는 관광객이 지난달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위에서 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이서희 특파원
▲딱딱한 소재… 떨어지면 사망 대신 중상
그물 설치에는 프로젝트 승인부터 10년, 착공 시점부터 5년이라는 긴 기간이 소요됐다.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당초 7,600만 달러로 예상됐던 설치 비용이 2억2,400만 달러(약 3,000억 원)까지 불어나면서 공사 중단과 재개가 반복된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자살 그물은 올해 1월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그물 덕분에 더는 다리에서 투신하는 것이 사망으로 직결되지 않게 됐다. 폭 6m의 그물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그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가 아니라 안개, 강풍 등에도 부식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스테인리스로 제작됐다. 표면이 거칠고 딱딱하기 때문에 그 위에 떨어지면 중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
그물은 이미 설치가 완료되기도 전부터 효용을 보였다. 그물 설치 막바지였던 지난해에는 투신을 시도한 사람의 수가 연평균 30여 명의 절반도 안 되는 14명으로 줄었다. 그물이 없었을 경우 올 들어 7월까지 90~120명이 투신을 시도하고 구조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구조된 사례는 66건이었다. 투신 시도 자체가 적었다는 의미다. 코술리치-슈워츠 대변인은 “7월까지 자살 시도로 인한 사망자는 4명”이라며 “일반적인 해였다면 15~20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스탠더드는 “올해는 거의 90년 만에 처음으로 자살이 한 건도 없었던 3개월이 있었다”고 전했다.
▲ “극단적 생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물이 자살을 100%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물에 떨어지더라도 다시 투신하는 경우까지는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와 구조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데 그물의 존재 의의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와 UC버클리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 시도로부터 생존한 사람 대부분은 다시 자살을 기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즉사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 자체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음을 뜻한다.
20여 년 전 투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뒤 자살 예방 옹호자가 된 하인스는 “나처럼 자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수천 명을 만났는데, 모두 같은 순간에 후회했다고 말했다”며 “극단적인 생각이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게 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코술리치-슈워츠 대변인은 “그물은 낙담한 사람들에게 보살핌과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두 번째 기회를 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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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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