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핵심키는 전력인프라
▶ 원가 이하 판매에 부채 200조
▶송전선로 건설까지 연기 잇달아
▶3년새 정전 건수 60% 이상 급증
▶지역·시간별 요금 차등화 검토
‘물가 안정과 함께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 악화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한국전력 같은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에 대해 “원가 변동 요인을 적기에 주기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 부담만 고려해 전기요금을 묶어두면 한전의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미래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전의 지난해 말 현재 총부채는 202조4,502억 원으로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많다. 부채 비율만 543%다. 연간 이자 비용만 4조~5조 원에 이른다.
문제는 한전의 재무 위기가 전력망 확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대 등 전력 수요 증가에 필요한 전력망 보강과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재원이 최소 152조 원으로 추정된다.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 때 예상했던 56조5,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전은 신규 배전망 투자에 31조 원, 전력 설비 유지·보수에 65조 원 이상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더 크다. 한전은 지난해 5월 1조3,000억 원 규모의 송전선로 등 전력망 건설 사업을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사업 시기를 뒤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전력 유지·보수 역량이 약화하면서 국내 정전 건수는 2020년 651건에서 지난해 1,045건으로 3년 만에 60.5% 증가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재무구조 악화로 고유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전력망 투자 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개편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를 확대하고 지역별 차등 요금제 등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호 제주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제주 등에서 시범 운영 중인 계절·시간대별 요금제의 확대 적용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26년 시행 예정인 지역별 차등 요금제 역시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어 전력 자원의 효율적인 지역 분산을 유도하는 가격 신호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 요금과 관련해서는 원가 연동제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도로나 철도, 상수도에 국가 재정이 들어가는데 유독 송전망은 한전 자체의 돈으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한전이 전력망 투자를 위한 재원을 축적할 수 있도록 원가 변동 요인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지난해 전력기금 징수액은 전년 대비 26.6% 급증하며 3조100억 원을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전기요금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된 영향으로 당초 계획했던 2조1,149억 원보다 1조 원 가까이 더 걷힌 것이다.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용도가 제한된 탓에 여유 자금은 1조 4494억 원에 달했다.
전력기금 사용처는 전기사업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전력 수요 관리와 도서·벽지의 주민에 대한 전력 공급 지원 등 22가지로 정해져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기금은 소비자들이 지불한 돈인 만큼 전력 수요에 부응하는 송배전망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첨단산업 단지에 대한 전력 인프라 확충 역시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전력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대만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분야를 국가가 총체적으로 지원한다”며 “전력을 끌어오는 송전망 등 국가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전력기금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했다.
학계에서는 전기요금 현실화와 차등 요금제 도입으로 부담이 커지는 서민에 대해서는 별도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취약 계층 부담 문제는 별도로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하절기 및 동절기 냉난방 요금 부담이 큰 취약층에는 에너지 바우처 지급 확대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4년부터 장애인·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 보호를 위해 복지 할인 제도를 도입해 지난해까지 총 6조6,000억 원을 지원했다”며 “복지 할인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전기요금 복지 할인 금액을 전력기금 등의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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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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