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 8.7% 급락 ‘역대 최대 낙폭’
▶ 외국인 투자 앞다퉈 자금회수
▶2거래일간 코스피 270조 증발
▶반전 모멘텀 안보여 변동 지속
5일 국내 주식시장이 코스피·코스닥시장을 막론하고 역대 최대 수준으로 주저앉은 것은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 정점론, 버크셔해서웨이의 애플 지분 축소, 엔비디아의 신제품 설계 결함설 등 각종 악재가 겹치자 외국인투자가들이 앞다퉈 자금 회수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매수한 해외 자산을 다시 매도) 본격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암살에 따른 중동 정세 악화 등이 단기 증시 유동성에 새로운 압박 요인이 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과도한 하락”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코로나19 이후 처음 닥친 코스피 발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투매가 투매를 낳는 수급 악재 속에 코스피 ‘공포지수’는 코로나19 이후 가장 높았다. 단기적으로 증시 반등을 기대할 만한 이벤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당분간 증시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일 100포인트 이상 빠졌던 코스피는 이날도 장이 시작한 지 1분이 조금 넘은 시각 곧바로 2,600선을 내줬다. 한국거래소가 코스피와 코스닥에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사이드카와 주식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1단계 서킷브레이커를 연이어 발동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특히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현물을 1조5,297억 원어치 내던져 2022년 1월 27일(1조7,141억 원) 이후 약 2년 6개월 만에 최대 순매도액을 기록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1,997조7,458억 원으로 쪼그라들어 올 1월 22일 이후 7개월 만에 2,000조 원 밑으로 내려갔다. 2~5일 2거래일간 코스피에서 증발한 시총 규모만 270조 원 이상에 달했다. 이 기간 코스닥 시총도 398조724억 원에서 60조 원 가까이 빠져나가 338조4,265억 원으로 줄었다.
국내 증시의 속절없는 추락에는 지난주 미국 제조업 지표에 이어 고용 지표까지 부진했던 점이 직격탄이 됐다. 이달 2일 미국 7월 실업률이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4.3%로 발표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서 경기 침체로 빠르게 옮겨갔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과도한 투자비 지출 등 빅테크 실적으로 대두된 인공지능(AI) 시장 관련 의구심도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또 다른 요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까지 올 상반기에만 보유한 애플 주식을 절반 가까이 매도하자 빅테크에 대한 투자심리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하며 외국인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점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증시의 변동성이 유독 커진 주요인이 됐다. 미국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진 데 반해 일본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공산이 커지면서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급감한 상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기계적 매도와 수급 교란이 시장 급락을 초래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엔·달러 환율이 최근 약 13% 가까이 조정됐는데 이는 코스피의 2거래일간 낙폭과 일치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하니예 암살 이후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다시 한번 고조되는 점도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됐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증시 낙폭이 지나치게 컸던 만큼 충격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불안 심리가 확대된 탓에 주가 변동성은 당분간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날 이른바 공포지수라 부르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 지수)는 110.66% 상승한 45.86으로 마감했다. 2019년 4월 10일(139.94%) 이후 최대 폭이자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고용 지표가 나쁘게 나온 데다 엔비디아와 관련한 안 좋은 소식이 빅테크 주가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며 “경기 침체 우려가 오래 갈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투자자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는 “앞으로 미국 경기지표와 AI 기업 실적 등을 통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점이 밝혀져야 주가도 상승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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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윤경환·김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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