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州법무장관·상원의원·부통령 거쳐 美 마지막 유리천장 깨기 나서
▶ 부통령 땐 존재감 약했으나 바이든 사퇴로 바통 받자 인기 급상승
▶ ‘자식없는 여자’ 공격받으나 의붓자녀 2명 양육…남편과 함께 든든한 지원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로이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아 민주당 대선 후보로 2일선출됨에 따라 그는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새로운 역사쓰기에 도전하게 됐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권을 거머쥘 경우 그는 미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된다. 흑인으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또 미국에서 아시아계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도 최초가 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그동안 백인과 남성이 주류였던 미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최초'의 역사를 써 왔다. 그가 걸어온 길이 곧 흑인·아시아계 여성의 새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흑인이자 인도계라는 정체성을 지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딛고 달려온 끝에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라는 급변 사태를 만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권에 도전하게 됐다.
그는 대선을 3개월여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레 등판하게 되면서 그간 대세론을 굳혀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막상 대선 캠페인이 시작된 뒤 여성과 젊은 층의 지지세를 결집하면서 예상 외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
◇ '흑인·아시아계·여성' 차별 극복하고 대선 후보까지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인도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탠퍼드대학 경제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암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외할아버지는 인도의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엘리트 집안이었지만, 그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백인이 대부분인 '화이트 커뮤니티'에서 자라면서 상당한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엔 당시 인종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한 '버싱'(busing) 정책에 따라 매일 아침 버스에 실려 백인들이 주로 사는 부유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버싱이란 학교 내에 흑백 학생들이 섞이도록 흑인 거주지 학군과 백인 거주지 학군 사이에 버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서로 상대 학군의 학교로 실어 나르던 정책을 말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2019년 상원의원 시절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와 첫 TV 토론에서 과거 인종차별주의 성향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협력했던 바이든의 이력을 공격하며 "당신은 그들과 버싱 반대에 협력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소녀가 있었다. 그 작은 소녀가 나"라고 울먹이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적 정체성 혼란은 청소년 시절에도 이어졌다. 부모가 이혼한 뒤 12세 때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로 이주했는데, 역시 백인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어서 소수인종으로서 겪는 소외감이 컸다고 한다.
해리스가 비로소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은 것은 대학 때부터였다.
백인 위주의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흑인 대학에 진학하길 원한 그가 선택한 곳은 워싱턴DC의 흑인 명문대학인 하워드대였다. 흑인 엘리트 학생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그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전미흑인언론인협회 초청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그(해리스)는 항상 인도계 혈통이라고만 홍보했다. 나는 몇 년 전까지, 그녀가 흑인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녀가 흑인인 줄 몰랐다"라면서 정체성에 대한 공격을 했으나 이미 그는 대학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 혼혈 혈통을 지녔다는 점에서 종종 '여자 오바마'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정체성에는 인도계 외가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9년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어머니와 외조부를 꼽으며 "어머니는 인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유산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이것을 내게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의 외조부는 인도에서 미국의 국무장관 격인 직책을 맡았던 고위 관료 출신으로, 해리스 부통령은 어린 시절 정기적으로 인도를 방문해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해변을 거닐면서 정치, 부패, 정의 등을 놓고 토론하곤 했는데, 이런 모습은 책임감과 정직, 고결함이라는 측면에서 내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하워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1990년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의 지방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으로 옮겨 담당 사건에서 유죄 선고율을 끌어올리며 검사로서의 역량을 뽐냈고, 2004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으로 선출됐다.
재선을 거쳐 6년간 주 법무장관을 역임한 뒤 2017년에는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선출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흑인 여성이 연방 상원의원이 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이어 2020년에는 55세의 나이에 바이든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낙점된 뒤 대선 승리로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또다시 미국의 최초 흑인·아시아계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이라는 기록을 썼다.
◇ 부통령 재임 기간 존재감 약했지만…전면 등장 후 흥행몰이
해리스 부통령이 미 유권자들에게 처음 얼굴을 각인시킨 것은 2019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TV 토론에 나오면서였다.
당시만 해도 2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바이든은 물론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쟁쟁한 후보들이 포진해 해리스의 존재감은 미미했으나, 그해 6월 첫 TV 토론에서 송곳 같은 질의로 바이든 당시 후보를 몰아붙이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도 검사 출신인 해리스의 날카로운 언변은 그의 주요 강점으로 꼽혔다.
또 소수 인종이자 여성으로서 미국의 비주류 사회에 어필한다는 점도 무기다.
다만 그는 정치인으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부통령 재직 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특히 백인 남성으로 주류 정치계에 수십년간 몸담은 백전노장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하면 정치 경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게 사실이다.
또 유색인종 여성인 해리스가 그간 강력한 카리스마로 인기를 누려온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을 경우 민주당의 승산이 높지 않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후 해리스가 유력 후보로 전면에 부상하자 진보 진영의 지지 표명이 잇따랐고, 특히 여성과 젊은 층이 환호했다.
온라인에서는 '코코넛 나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과 함께 영국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의 노래가 결합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해리스가 지난해 5월 연설에서 젊은이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역사적인 맥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너희는 코코넛 나무에서 갑자기 떨어진 줄 아느냐"는 말을 인용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흥겹게 춤을 자주 추고, 독특한 말투로 말하며 호탕하게 잘 웃는 등의 특징적인 언행도 젊은 층에 호감을 주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가 2020년 당시 트위터에 유색인종 아이들이 자신을 보며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글 중 "그들은 과거로부터의 짐은 던 채로,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라는 구절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해리스 부통령이 법조인 출신답게 정확하고 세부적인 사실에 기반해 얘기하면서 구체적인 일화나 비유 등을 활용해 젊은 층에 호소력을 발휘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자금 모금에서도 뜻밖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그가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지 하루 만에 해리스 캠프는 88만명으로부터 총 8천100만달러(약 1천100억원)를 모금하는 등 7월 마지막날까지 10여일간 3억1천만달러(4천200여억원)을 모금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난 7월 한달간 모금액을 크게 압도했다.
그는 대선의 승패를 가름할 경합 주에서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경합 지역으로 꼽히는 7개 주 가운데 4개 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우위를 보였다.
해리스 부통령의 가족도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다.
2014년 결혼한 동갑내기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 해리스 부통령이 정치에 뛰어든 뒤에는 워싱턴DC로 따라와 묵묵히 부인을 조력해 왔다.
미 헌정사상 첫 '세컨드 젠틀맨'이 된 엠호프 변호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오는 11월 당선되면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녀를 낳은 적은 없지만, 엠호프 변호사가 해리스 부통령과의 결혼 전에 낳은 딸 엘라(25)와 아들 콜(30)을 10대 때부터 양육했다.
엘라와 콜은 해리스 부통령을 부를 때 새엄마라는 호칭 대신 엄마와 카멀라를 합친 '마멀라'(Momala)라는 애칭을 쓰며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모델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엘라는 해리스 부통령이 자식이 없다는 공격을 받자 인스타그램에 "콜과 나 같은 귀염둥이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아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나"라며 "나는 세 부모님 모두를 사랑한다"고 썼다.
미 연예매체 피플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의붓아들인 콜 엠호프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제작사 '플랜B'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정보 사이트 IMDB에 따르면 콜 엠호프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에 스태프로 참여한 이력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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