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미대사가 지난 16일 밀워키에서 열린 미 공화당 전당대회장을 찾아가 활동한 사실은 요즈음 유행어로 멘붕(멘탈붕괴)을 일으켰다.
대사라는 직책은 주재국에 파견되어 본국 정부를 대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명을 갖는다. 따라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외교관)라면 주재국에 근무하는 동안 일거수일투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어야 하고 사명에 투철해야 함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심모원려(深謀遠慮: 깊이 고려하는 사고와 멀리가지 내다보는 생각)라는 사자성어는 외교관의 제 1덕목이다. 호오(好惡: 좋음과 싫음)와 회로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표정관리는 외교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소양에 따라붙는 격언이다.
조현동 주미대사가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 부하 외교관들을 대동하고 방문한 것은 그 모양새부터가 거슬린다.
먼저 방문동기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가 애매하다. 단순한 친선 방문이었나, 공화당 요인 실세들과의 교제 차원이었나. 도널드 트럼프 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측, 단정, 미리 축하인사를 하러 갔던 것인지 궁금증이 이어진다.
조 대사 일행이 공화 전당대회 현장을 찾아 간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그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대폭인상 요구, 미군철수 위협, 북한 김정은을 빌미로 한국을 괴롭히려는 등 강경노선을 사전에 순화시켜 보자는 의도였음으로 짐작하는데 충분한 이해가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무마작업에 대사가 직접 나섰어야 했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대사가 직접 나섰다면 한국정부가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 축하사절을 보냈다는 것인데 이런 식의 의전은 미국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크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취임식 자리라면 물론 참석해야겠지만….
외국 대사가 주재국의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 민주당에서 조현동 한국대사 일행의 공화당 편애 태도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볼 것인지도 배려했어야 한다.
조 대사 일행이 신중했어야 옳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의외성이 항상 존재해 왔다. 링컨, 트루먼을 비롯하여 케네디, 클린턴, 오바마 전 대통령들도, 전혀 당선 될 가능성이 없었던 후보들인데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던 경우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무능한 지도자가 될 수 없도록 조직구조가 잘 짜여 있어 대통령을 인기스타 선발처럼 승자가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번 대선도 당장은 트럼프 후보가 거의 당선 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가 전 유권자들의 선풍적 인기를 모아 깜짝 대통령직을 석권할 경우도 생길지 모를 일이다.
우리 조 대사 일행이 공화당을 찾아가 예의를 차린 것은 신중치 못한 하책이었다. 우리 대사관도 잘 파악하고 있다시피 미국정치는 트럼프가 아무리 나토 등 타국에 강경하게 나오며 고립주의, 미국 제일주의를 고집한다고 해도 반드시 반대파의 견제와 조절이 뒤따를 것이다.
조현동 대사 일행이 미 공화당 전당대회를 방문하여 물론 우의를 과시하고 축하인사를 건넸을 텐데 분명 신중치 못한 과속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 선출도 끝나지 않은 공화당 잔치에 한국 대사 이외에 다른 어느 나라 대사도 자존심 잃고 현장을 방문, 배회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 외교관들의 태도를 어떻게 보았을지 자괴감을 금할 수가 없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 아니었나.
주재국을 존중하되 우리나라의 품격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특히 외교관들은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워싱턴 한국일보 등 보도를 보면 미주 우리 동포들 중 27%만이 공화당을 지지하고 나머지는 민주당 등을 지지한다는 지지율 통계를 보았다.
조현동 대사가 이런 동포들의 여론을 파악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트럼프 후보는 매일같이 증오에 가까운 반이민 감정을 토해내고 있는 중이다. 조 대사는 미국에서도 오랜 시간 근무한 적이 있고 능력 있는 외교관으로 그의 대사 부임에 많은 동포들의 기대가 컸었다.
이번에 미 공화당 전당대회 방문 활동이 용산 대통령실의 지시였는지, 외무부 본부 훈령이었는지, 대사 주위 참모들의 건의였는지, 아니면 대사 본인의 결단이었는지 규명해 볼 문제다. 이번 대사관 활동보고서를 받아 든 윤석열 대통령의 평가가 어떤 수준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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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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