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 24년만에 방북
▶ 북러,‘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격상 예고
▶북 자동적 군사 개입 기대, 러 수용 안할 듯
▶‘루블화 무역결제’로 대북 제재 무력화
▶에너지·원자재 구매, 무기 교역 강화 우려
군사러시아 측이 공언한 새로운 조약은 곧 북러 관계의 파격 상승으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의 전통적 대외 관계는 밀착도에 따라 ‘선린 우호 관계→상호 신뢰하는 협력관계→전략적 동반자 관계→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전략적 동맹(연맹)’ 순이 된다. 기존 조약은 이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선린 우호 관계이며, 예고된 조약은 그보다 세 단계나 상승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 한 번에 ‘퀀텀 점프’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다양한 형용사를 붙이면서 ‘관계의 차별성’을 부각해왔다. 예를 들어 중국과는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 베트남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인도는 ‘특별하고 특권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지칭하고 있다. 이번 회담 결과, 북한과의 관계에는 어떤 형용사가 붙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가장 큰 쟁점은 협정상 명시된 군사협력 수준과 별도 군사합의 문서의 채택 여부다. 일단은 2000년 ‘침략 위험이 있으면 지체 없이 접촉’한다는 우호친선 및 협력 조약 2항이 보다 구체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북한은 1961년 조·소 동맹 수준의 유사시 군사적 자동 개입 또는 ‘군사적 및 원조 제공’을 명시한 조항의 부활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대신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자위권’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8일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조선의 벗들이 계속되는 미국의 경제적 압력과 도발, 공갈과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매우 효과적으로 자기 이익을 고수해 나가고 있는 데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공동으로 추구해나간다는 조항도 삭제될 공산이 크다. 기존 북러 조약 제4조는 ‘한반도 분단 상황의 조속한 종식, 그리고 독자성, 평화통일, 민족결속 원칙에 따른 통일이 한반도 국민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천명하고, 헌법에서 ‘통일’ ‘동족’이라는 표현을 모두 삭제했다. 푸틴 대통령도 기고문에서 한반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별도의 군사합의 문서가 채택되면 ▲국방 고위급 대화 정례화 ▲ 군사기술 지원 ▲연합군사훈련 추진 등을 협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제재 등을 고려해 문서로 남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협정 체결이 ‘준동맹’ 수준의 군사밀착을 뜻하는 건 아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 1997년 ‘군사 자동개입’ 조항이 있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도 2022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는 최근 러시아 주도의 군사·안보협력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탈퇴하겠다고 엄포까지 놨지만, 조약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석배 전 주러대사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결국 외교적 수사”라며 “앞으로 어떻게 협력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은) 러시아가 북측의 기대에 충족하고, 동맹으로 발전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24년 만에 방북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루블(러시아 화폐단위) 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한 대북 제재 무력화 야욕을 드러냈다. 미국의 제재와 감시 대상인 달러화를 대신해 루블화 거래를 확대해 루블화 영향력을 키우고, 북한의 대외 거래 뒷길을 노골적으로 터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18일 방북을 앞두고 북한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해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를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과 국제관계를 더욱 민주주의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로 만들기 위해 밀접하게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이번에 (관련 협의가) 다시 진전된다면 러시아가 북한 내에서 기축통화로서 루블화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북러 제재에 앞장서는 서방 국가들의 달러·유로화 중심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탈피한 북러만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보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본보 통화에서 “러시아는 북한에 우주과학 기술과 에너지를,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 제공을 확대할 수 있어 경제 교역 잠재력이 큰 상황”이라며 “러시아와 북한 모두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 금융 제재를 받는 입장인데 북한이 루블 결제를 활용하면 두 나라 간 경제 협력이 증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앞서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경제공동위원회를 열고 쌍무교역(상대 생산품을 사주는 동시에 자국 생산품을 파는 무역) 주요 통화로 루블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이 달러를 선호한 데다 양측의 교역량이 많지 않아 실질적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무기거래 등의 교역량이 커진 현재 상황은 10년 전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어차피 북한은 대북 제재로 인해 외부와 교역을 하거나 돈을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루블화로 계산할 경우 자신들이 필요한 에너지나 원자재를 사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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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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