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주가상승 崔 기여도’ 이례적 수정…대법원 심리 더 복잡해져
▶ “치명적 오류” vs “사소한 오류”…법조계는 신중론 속 ‘논란 자처’ 비판도
항소심 관련 입장 밝히는 최태원 회장 (서울=연합뉴스)
최태원(63)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17일(이하 한국시간) 판결문의 오류를 수정하면서 '세기의 이혼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1조3천808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판단할 대법원의 심리 과정에 판결문 수정의 적법성까지 추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
최 회장 측은 판결문의 일부 수정으로 그칠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됐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오류의 정도와 수정의 적법 여부는 결국 대법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신중론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던 판결에 일정 부분 흠집이 난 셈인 만큼 항소심 재판부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이혼소송 2심 공판 마친 노소영 관장 (서울=연합뉴스)
◇ 대법원, 경정 타당성 먼저 판단…崔측 항고하면 2개 재판부 별도 심리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문을 이날 경정(수정)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주식 가치를 주당 100원에서 1천원으로 변경한 것이 골자다.
그 결과 해당 주식의 가치가 15년새 4천456배 커진 과정의 기여도 판단도 달라졌다.
애초 재판부는 최 회장과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각각 355배와 12.5배로 판단했는데, 오류 수정에 따라 각각 35.6배와 125배로 뒤바뀌게 됐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심리할 이혼 소송 상고심의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해지게 됐다.
일단 대법원은 1차로 이날 항소심의 판결문 수정이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적법하다고 대법원이 판단한다면, 수정된 '1천원'을 전제로 1조3천808억원의 재산 분할이 타당한지를 심리하게 된다.
만일 수정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항소심 판결이 바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애초 잘못된 수치(100원)로 기재된 판결을 전제로 한 항소심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잘못된 수치로 판단했음에도 항소심의 결과가 타당하다면,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한 채 경정 결정만 파기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100원'이라는 판단이 항소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를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법에 돌려보낼 수도 있다.
최 회장 측은 민사소송법 211조 2항에 따라 항소심의 수정 결정에 불복해 즉시항고장을 낼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대법원은 항고심과 상고심을 각각 별도로 배당해 두 사람의 이혼 사건을 각각 심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두 사람의 이혼 심리의 최종 결정은 더욱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최태원측 '치명적 오류' 주장…재계서는 '팻 핑거' 거론도
최 회장 측은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수정한 부분이 '치명적 오류'로, 단순히 판결문 수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판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 결과의 파장을 주시해 온 재계에서는 '법조판 팻 핑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팻 핑거는 증시에서 거래 담당자들이 자판보다 굵은(fat)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다 숫자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의미한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실수로 인해 증권사가 문을 닫는 등 파국으로 이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2013년 한맥투자증권의 파산이 있다. 당시 한맥투자증권 직원이 옵션 가격의 변수가 되는 이자율을 '잔여일/365'로 입력해야 하는데, '잔여일/0'으로 입력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매도·매수 주문을 냈다.
주문 실수로 한맥투자증권이 입은 손실액은 462억원에 달했고, 결국 문을 닫았다.
2005년 당시 일본의 대형 증권사 미즈호증권에서 직원이 61만 엔짜리 주식(제이콤) 1주를 팔려다가 이 주식 61만주를 1엔에 내놓은 사건도 팻 핑거의 예다.
직원의 '대형 사고'로 주식은 하한가로 곤두박질쳤고, 도쿄 증시도 폭락했다. 직원의 실수로 회사가 부담한 손해는 약 400억엔(약 4천억원)에 달했다.
'10 단위'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실제 최 회장과 선대회장의 기여도 차이는 100배로 벌어졌고, 재산분할 결론을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논리인 셈이다.
반면 노 관장 측은 최 회장 측이 "일부를 침소봉대해 사법부 판단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결론에는 지장이 없다"고 반박했다.
◇ 법조계 "이례적 경정에 논란 자처" 비판…"사소한 오류" 목소리도
법조계에서는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는 만큼 최종 결과를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다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송사에 파격적 판단을 한 항소심 재판부가 크든 작든 오류를 범하고 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려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인 A 변호사는 "오기가 있다면 당연히 경정을 할 수가 있지만 이같은 판결에 경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깜짝 놀랐다"며 "오히려 최 회장 때가 아닌 최종현 회장 때 더 많이 성장을 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문까지 수정할 정도의 오류가 아니라고 재판부가 봤다는 것은 대법원에서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인 셈"이라며 "그럴 것이라면 경정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외려 반박의 여지를 주는 등 논란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가정법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B 변호사는 "주문을 변경하지 않으면서 논리를 다소 바꾼 것으로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사소한 오류라면 상고심에서 판단하도록 하면 되는 것일 텐데 굳이 왜 경정했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또 "최 회장 측의 상고 이유를 보고 재판부가 판결의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추측했다.
반면 이혼 사건을 주로 다루는 C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부부가 결혼하고 나서 오른 주식의 가치 증가분은 전부 분할 대상이 돼야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최 회장 측의 주장은 사소하게 틀린 부분을 찾은 것으로, 이 숫자의 차이가 대법원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가 100원이었든 1천원이었든 현재 가치가 얼마냐가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며 "부부가 경제공동체를 이루던 시절에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증가하면 부인 몫도 인정돼야 하며, 65:35의 비율로 나눠야 한다는 판단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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