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한국일보 애독자 “난 이래서 신문이 좋다”
올해로 미주 한국일보가 창간된 지 55년이 된다. 스마트폰의 도래와 함께 종이로 된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일보를 보는 것일까?
본보 독자들을 만나 신문을 통해서 어떤 이익을 봤는지, 무엇이 좋았는지를 물어봤다. 그중에서도 본보가 소개한 오바마케어, 메디케어, 소셜연금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에 감사를 표했다. 또한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 19에 발맞춰 정부 보조금 등이 쏟아졌을 때는 정부 보조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로사 박 씨(MD 실버스프링, 60대 초반)
“신문 통해 자녀들 인턴십도 해결하고 비즈니스도 찾았어요”
“워싱턴 한국일보를 통해 자녀들의 인턴십도 해결하고 락빌에서 현재 남편과 함께 하고 있는 비즈니스도 찾았어요.”
20세때 유학으로 미국에 와서 결혼 후 30년 이상 한국일보를 구독한 로사 박(미주한인재단 워싱턴 회장, 사진) 씨는 “한국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모두 인턴십을 했고 덕분에 지금은 좋은 곳에 취직했다”면서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제가 회장으로 있는 미주한인재단 워싱턴 산하에 한인 학부모회를 설치, 30여명이 인턴십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큰아들은 뉴욕의 한 대학에서 범죄학을 공부하고 현재 미 해군 IT 전문가로, 둘째는 Navy Credit Union에서 IT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신문을 보게 된 계기는 결혼해서 시어머니가 심심해할까 싶어 구독하게 됐는데 정작ㄹ 남편과 함께 하는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됐다”면서 “저와 남편은 락빌에서 비어·와인 스토어를 운영하는데 락빌 타운 센터 내에 들어서는 대형 수퍼마켓에 비어 와인 면허를 예외적으로 발급하는 법안이 메릴랜드 주의회에 상정됐을 때 남편이 몽고메리 주류협회를 조직, 주의회에서 로비활동을 펼쳤는데 한국일보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신문에는 크고 작은 한인단체가 소개되는데 한번은 평생학교인 ‘메릴랜드 상록회’가 소개됐다”면서 “저희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모두 상록회에 함께 등록해서 친구도 사귀며 만학의 즐거움을 누렸다”고 말했다.
또 메디케어와 소셜 연금 등에 대한 기사가 자세히 소개돼 부모님과 시어머니에게 전달했는데 메디케어 가입 및 소셜 연금 신청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상남 박사(VA 스털링, 80대 중반)
“워싱턴한인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있어 좋아요”
“워싱턴 한국일보를 1973년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는 데 가장 좋은 점은 한인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아는 것입니다.”
1969년 도미, 1973년 조지워싱턴대 방사선종양학과 조교수로 워싱턴에 도착하면서 한국일보를 구독한 이상남 박사(사진)는 오늘은 어떤 기사가 있나 싶어 신문을 펼쳐는 보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낙(樂)이라고 한다.
한미장학재단 전국이사장과 한미장학재단 동부지회장을 역임한 이 박사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한미장학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일보는 한인사회 소통의 장의 역할과 함께 결속이 필요할 때는 결속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한미장학재단 전국이사장을 하면서 한국일보를 통해 장학금을 모금했고 또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박사는 또 “한인사회에 일간지가 있다는 것은 타 커뮤니티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면서 “조지워싱턴대 의대 교수 재직시절, 한번은 인도 의사가 내가 한국일보를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신문을 통해 고국 소식을 알 수 있는 것도 좋았다”면서 “물론 워싱턴 포스트 등도 한국 소식을 다룰 때가 있지만 자세히 다루지 않는데 한국일보에서는 자세히 다뤄져셔 좋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특히 “한국일보가 좌우에 편향하는 균형감을 잃지 않고 편집해주는 것이 고맙다”면서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바라는 바는 동포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잘 제시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모정호 씨(VA 로턴, 50대 후반)
“신문 통해 한인 관련 로컬 뉴스 알 수 있어 좋아요”
“1986년에 미국에 오자마자 한국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독자로서 신문을 통해 한인들과 관련된 워싱턴 지역 로컬 뉴스를 알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아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뒤 부모를 따라 미국에 도미한 모정호(전 워싱턴한인마라톤클럽 회장, 사진) 씨는 “한국일보를 구독한지 올해로 38년이 된다”면서 “초창기에는 모국 소식에 관심이 가서 모국 기사에 눈이 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인사회를 포함한 워싱턴 지역 로컬 뉴스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모 씨는 “한인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했다는 기사를 볼 때는 제 자신이 한인이라는 것이 뿌듯해졌고 한인사회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는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민 초창기에는 워싱턴 지역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알아 서로 입으로 알렸지만 이제 한인 인구가 크게 늘었기 때문에 ‘소통의 장’으로서의 신문의 역할이 커졌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이 취미인 모씨는 한번은 버지니아 알링턴 소재 ‘이오지만 메모리얼’을 배경으로 한 일출 사진을 찍어 한국일보에 보내, 자신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모 씨는 신문에서 추석, 설 등 한국의 명절과 3.1절, 8.15 광복절 등에 대한 기사가 나기 때문에 몸은 비록 미국에 있지만 한국과 연결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모 씨는 또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서 메디케어를 타고 소셜 연금을 받을 때는 이에 대한 정보가 신문에 자세히 나기 때문에 부모에게 시의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면서 “이와 함께 여행 섹션에서 여행 후기는 내가 여행을 하는데 도움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모 씨는 여행 후기를 읽고 멕시코, 플로리다, 미국 서부 여행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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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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