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분 단위 일정 30여건 소화… “아무도 못하는 사업 누구보다 먼저”
▶ ‘내실 경영’ 강조 최태원, 대만서 TSMC 등 만나 ‘AI 리더십’ 확보 모색
2021년 당시 기념촬영하는 이재용 회장과 한스 베스트베리 CEO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재계 1, 2위인 삼성과 SK그룹을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나란히 글로벌 현지 경영에 나섰다.
그동안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협력 관계를 다지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며 그룹 안팎에서 불거진 우려를 해소하는 데 적극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이재용, 2주간 미국 출장…분 단위 빡빡한 일정 소화
9일(한국시간)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이달 중순까지 약 2주에 걸쳐 뉴욕과 워싱턴DC 등 동부는 물론, 서부의 실리콘밸리까지 아우르는 장기 출장에 올랐다.
지난 4일 뉴욕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것을 비롯해 출장 기간 매일 분 단위까지 나눠지는 빡빡한 일정 30여건을 소화하며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인공지능(AI)·반도체·통신 관련 기업 CEO, 정관계 인사들과 릴레이 미팅을 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 중 하나인 버라이즌과 같은 주요 고객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취지다.
작년 4∼5월 역대 최장인 22일간의 미국 출장 기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빅샷'(거물) 20여명을 만나고 돌아온 만큼 이번 출장에서 어떤 빅샷을 만날지 또 어떤 사업 성과로 이어질지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현지에서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고강도 쇄신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1주년(7일)을 맞아 나온 이 회장의 발언은 역으로 삼성이 현재 처한 위기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평가다.
주력 사업은 후발 주자에 밀리거나 쫓기고 있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 동력 발굴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장 AI 시장 확대로 급부상한 고대역폭 메모리(HBM)만 봐도 삼성의 투자 실기가 뼈 아픈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차세대 기술 개발 등을 통해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초격차를 회복하고, 이 선대회장의 5대 신수종사업에 버금갈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키워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비상 경영에 돌입한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과 10년 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미래사업기획단의 수장을 맞바꾸며 분위기 쇄신과 경쟁력 제고에 나선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과 베스트베리 CEO와의 오랜 친분을 토대로 대규모 수주를 따낸 것처럼 이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 최태원, 대만서 TSMC 만나…尹대통령 중앙亞 국빈방문도 동행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로 SK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된 가운데 최 회장은 당초 예정됐던 해외 출장을 소화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6일 대만을 찾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공식 선임된 웨이저자 회장 등을 만나 AI 반도체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3일 이혼 항소심 판결에 대해 "SK와 국가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 확장을 통해 'AI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지 사흘 만이다.
최 회장은 TSMC와의 회동에서 "인류에 도움되는 AI 시대 초석을 함께 열어가자"고 제안했으며 양사 간 HBM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방문에 대해 디지타임즈 등 대만 매체들은 대만 공항에 계류 중인 SK 전용기까지 포착해 보도하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새너제이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CEO를 만나는 등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AI와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확보해 시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상의 회장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 3일 대한상의 주최 '제22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에 참석한 데 이어 이번 주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해 비즈니스포럼 등에 참석하는 등 대외 활동도 예정대로 소화할 계획이다.
이달 말 예정된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해 계열사별로 진행 중인 '리밸런싱' 작업도 점검한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주도로 그룹 사업 전반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재조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최 회장은 앞서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K CEO 세미나'에서 '서든 데스'(돌연사) 위험을 언급하며 일부 계열사의 방만한 투자에 대해 질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계열사간 중복 사업을 조정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오는 10일자로 최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을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으로 선임해 에너지·그린 사업 총괄을 맡기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리밸런싱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혼 항소심 판결 이후 일각에서 경영권 약화 우려까지 제기됐지만 이전과 같은 활발한 대내외 활동으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려를 불식하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 제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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