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히도미는 도쿄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런던대학에 유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했다. 졸업 후 런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피카딜리 호텔에 피아니스트로 고용되어 호텔 로비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L 종합상사의 런던 주재원이었던 친구 지훈과 나는 퇴근 후 만나서 이 호텔에 가서 히도미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그녀는 방문객에게 5분 이내의 연주곡으로 로맨틱한 클래식 소품과 경음악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감성적인 연주를 좋아했다. 지훈은 그녀의 자상하고 예쁜 모습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흠뻑 빠져서 히도미를 사모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지훈과 히도미는 사귄지 5개월 만에 지훈이 출석하는 침례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피로연은 히도미의 어머니와 함께 지훈의 아파트에서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중학교 음악 교사였던 다까코 씨는 사위와 딸의 행복을 위해 결혼 선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곡 ‘로맨스’(OP.64 )를 정성을 다해 연주하며 두 연인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했다.
두 연인은 깨알이 쏟는 신혼 생활을 만끽하며 한 해를 훌쩍 넘기며 5월이 되었다. 히도미의 몸에 이상이 왔다. 왼쪽 가슴에 딱딱하게 멍울진 덩어리를 발견했다. 통증은 없었으나 식욕이 감퇴하고 몸이 쉽게 피로해서 피아니스트의 연주 일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암 전문의의 정밀한 진료를 받았다. 진단 결과 유방암 3기의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권고로 6개월 예정의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6개월의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더욱 심해져 유방암 말기로 진전되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 히도미는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지훈의 정성이 감사하지만 지훈의 삶을 망쳐 놓은 것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파트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자살을 하려고 했다.
이를 눈치챈 지훈은 히도미에게 간절하게 애원한다.
“여보, 우리는 하나님이 맺어준 부부입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우리 사랑의 힘으로 병을 극복해 봐요.” “여보, 나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렇지만, 몸무게가 30kg으로 병약해진 나의 몸으로 회복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지훈은 주치의를 찾았다. 생존 시한은 3개월. 병원을 나오면서 마지막 3개월 동안 히도미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훈이 히도미에게, “여보, 의사가 당신과 함께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부탁했어요. 우리 내일 아침에 세인트 폴 성당에 가봐요. 탑 아래의 전망대에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데요,”
무신론자인 히도미는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훈에게 애정어린 미소를 보낸다. 지훈은 히도미를 휠체어에 태우고 세인트 폴 성당으로 가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20층 아파트 높이의 높은 전망대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히도미의 병을 낳게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벽에 걸린 오디오 스피커에서 성가가 피아노의 선율로 은은하게 실내에 울려 퍼진다. 히도미가 지훈을 올려다 보며 해맑게 웃으며, “피아노 음악을 들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월광곡이 생각나네요. 월광곡에는 눈먼 소녀와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어느 날 저녁 베토벤이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집 앞을 지나가던 눈먼 소녀가 창문을 두드리며, ‘베토벤 선생님이 아니십니까?’라고 하며 베토벤을 불렀어요. 연주를 중단한 베토벤이 황급히 집 밖으로 나와서 소녀를 꼭 안아주었어요.‘선생님을 만나다니요. 꿈인가 생시인가요?’
소녀가 떠난 후 베토벤은 눈먼 소녀를 만난 뜨거운 감격을 악보에 정신 없이 써 내려갔어요. 이 피아노곡이 불후의 명곡인 월광곡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히도미는 식음을 전폐하고 침대에 누웠다. 지훈이 히도미의 침대 옆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오열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여보, 나는 당신이 중병에서 회복되길 갈급했지만, 나의 힘만으로 당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지만 당신과 내가 함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세상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게요. 예수님의 친구인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려 줄게요. 나사로는 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 후에 도착하셔서 무덤 속의 나사로에게,‘나사로야 나와라’(요한 11:43)하고 나사로를 불렀어요. 나사로는 무덤 앞으로 걸어 나왔어요.”
“사랑하는 지훈 씨. 선한 당신을 만나서 너무 감사했고 당신을 정말 사랑했어요. 나는 당신을 통해 당신의 하나님을 좋아하고 믿게 됐어요. 내가 죽은 다음,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 행복하게 지내요. 약속해 주세요.”
며칠 후 히도미는 지훈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지훈은 히도미를 화장 해서 유골을 안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지훈은 신학대학을 마치고 목회자가 되어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빈자들을 돌보며 히도미를 가슴 속에 품고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훈이 떠나면서 나에게 남긴 말은, “그저 바라 볼 수만 있다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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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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