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중 사태로 본 ‘오디션 스타 권력’의 위험
▶ 스타가 학폭·음주운전 자숙은커녕 공연 강행
▶오디션 팬들 ‘유사 육아’
▶노년층 자기 취향 ‘효용’
▶왜곡된 팬덤 문화 양성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
가수 김호중과 그의 소속사(생각엔터테인먼트)·팬덤은 연예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차별·혐오 발언을 했을 때, 반성을 요구 또는 지지를 철회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사각지대였다.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의혹을 받은 K팝 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김가람과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윤서빈이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당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룹 슈퍼주니어 팬덤이 음주운전과 폭행 논란을 빚은 멤버 강인의 퇴출을 촉구하며 그의 활동을 보이콧하는 등 유명인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요즘 사회 분위기다.
김호중은 모두 예외였다. 김호중은 거짓말 끝에 뒤늦게 음주운전을 인정했고, 자숙하는 대신 공연을 강행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매니저에게 전화해 ‘대리 자수’를 요구하며 사고를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났는데도 팬들은 “마녀사냥 당했다”고 그를 감싸며 공연장을 찾았다. 팬들은 김호중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날에도 법원 앞에서 “힘내라”고 응원했다.
김호중은 왜 성역이 되어 끝까지 팬들의 호위를 받는 것일까.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됐고, 그의 팬덤이 오디션을 거치며 형성됐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김호중이 음주운전 사고 직후 소속사 막내급 직원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허위로 자수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을 두고 영장 심사에서 판사가 한 말이다. 법정에서 드러났듯 김호중은 소속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매니지먼트회사의 한 대표는 “아무리 소속사가 연예인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연예인이 ‘옷을 바꿔 입고 대신 경찰 조사를 받아달라’고 요구하고 그걸 받아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소속사가 김호중을 왕처럼 떠받들어 ‘1인 기획사’처럼 굴러갔다는 얘기”라며 황당해했다.
김호중 사촌 형인 이모씨가 2018년 설립한 생각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김호중을 영입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회사가 김호중에게 ‘손’을 쓰지 못하는 건 재정적 의존 때문만은 아니다. 2020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트로트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그의 성장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김호중은 하이브, SM엔테테인먼트 등 대형 음악 기획사를 통해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다. 20년 넘게 가수를 기획한 한 제작자는 “김호중 같은 오디션 스타는 프로그램 시청자 투표로 ‘선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자기 목소리가 크다”며 “소속사에서 견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 팬덤을 지탱하는 것이 팬들이 스타와 ‘유사 연애’를 하는 감정이라면, 김호중과 팬덤은 ‘유사 육아’ 관계로 이어져 있다. 김호중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키운’ 게 팬들 자신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디션 권력’의 부작용이 일파만파 커진 것이 ‘김호중 사태’의 본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중문화 팬덤을 다룬 책 ‘망설이는 사랑’을 쓴 안희제 작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팬덤은 문자투표나 자발적 홍보로 ‘내가 직접 스타를 만든다’거나 ‘나는 국민 프로듀서다’란 생각을 갖게 된다”며 “팬들이 김호중의 잘못을 방어하는 것에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김호중이 강행한 공연장을 찾은 팬의 상당수는 노년층이었다. 이들이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김호중을 엄호한 것에도 사회문화적 맥락이 있다. 심두보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노년층은 문화적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김호중 같은 트로트 가수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효용을 확인했다”며 “노년층이 자기 취향의 사회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며 객관적 진실에 눈감은 것”이라고 왜곡된 팬덤의 원인을 짚었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사회적 무해함이 중요시되는 ‘윤리 소비’의 시대가 찾아왔지만, 그 흐름을 역행하며 김호중과 ‘남 몰라 팬덤’이 공생하는 배경이다. 학교폭력 가해 의혹으로 지난해 MBN 트로트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에서 퇴출당한 황영웅을 팬들이 ‘희생양’이라 여기며 요즘도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공연을 찾아가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오디션 스타’의 권력 남발과 왜곡된 팬덤으로 인한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관행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유료 문자투표 참여 흥행과 톱10 진출자 전국 투어 콘서트의 성공 등을 위한 팬덤 구축에 급급해 참가자의 ‘사연 팔이’와 ‘인물 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며 “건강한 팬덤 형성을 왜곡할 수 있는 만큼 방송사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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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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