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가 우선 고민되었다. ‘쪽팔리기’가 딱 맞는 것 같은데 점잖지도 않고 감정이 너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몇 주 전 교육위원회의 실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일 교육감이 제출한 한 보고서에 외국어 교육이 포함되었다.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해 온 나에게는 민감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교육위원들이 던지는 발언들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버지니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한 외국어를 적어도 3-4년 정도는 공부한다. 현재 페어팩스 카운티 학생들이 외국어를 정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이다. 그런데 외국어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초등학교에서나마 학생들에게 몰입교육(immersion)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전반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져 여러 해 전에 시도했던 프로그램으로 ‘FLES’가 있다. 그런데 현재 이 프로그램은 카운티 내 초등학교 중 약 40% 정도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는 한 주일에 한 시간 정도의 외국어 교육 제공이 전부이다. 또한 원래 모든 초등학교에 보급하기로 했었는데 중간에 멈추었다. 프로그램 성과에 대해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는 평가 자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한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수업 시간을 더 늘리려면 추가 재정 배정이 필요한데 교육 재정 부족으로 추가 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60%의 학교에서는 같은 기회 제공이 되지 않는 불평등함과 기존 프로그램의 유지를 위한 평가 자료 부재로 인해 교육위원들이 프로그램 존속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날 회의 때 나는 외국어 교육은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으며 일주일에 한 시간의 교육으로는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 그리고 북한까지도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모든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저학년부터 일주일에 3-4시간씩 공부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날 나누어지는 논의의 양상을 볼 때 외국어 교육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거의 30년 전으로 돌아간 인상을 준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그때 자리를 비웠었던 동료 교육위원 한 명이 돌아와 내 옆으로 가만히 다가와 앉았다. 나만큼 외국어 교육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위원이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없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나지막이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제 당신도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갔던 그 위원이 그 후 바로 던진 발언이 회의장을 일순간 얼어붙게 했다. “나는 지금 여러 위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문 위원이 본인의 경험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누지 않았느냐. 지도자란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찾아야지 그냥 잘라 버리고 도망가선 안 된다. FLES 프로그램을 없애려면 나를 밟고 가라!” 그 위원은 발언을 마친 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본인의 극도의 불쾌감을 말과 몸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 후 FLES 프로그램을 없애자는 얘기는 아무도 다시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다음 회의 때 교육감은 어떻게 그 프로그램을 나머지 초등학교에도 보급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획을 제출했다. 그런데 내가 이 와중에 입지 축소를 느낀 이유가 있다. 교육감이 교육위원들에게 참고 자료로 얼마 전 초등학교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당시 몰입교육을 위시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측정해 보기 위해 실시한 조사인데 한인 가정의 참여가 극도로 저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다른 언어에 비해 낮은 결과로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한국어 몰입교육을 확장하자고 주문해 왔던 나의 주장에 확 찬물을 끼얹는 정말 ‘쪽팔리는’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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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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