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인 대피 진전 속 지상전 공개 반대 자제하던 터에 난민촌 참사
▶ 유대인-친팔레스타인 표심 두루 의식한 ‘줄타기’ 행보 시험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현충일인 27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메모리얼 데이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모든 세대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전장에서 싸워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2024.05.27 [로이터=사진제공]
이스라엘이 미국의 반대 속에 미뤄온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의 지상전을 본격화하려 하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에 의해 수십명의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곤혹스럽게 됐다.
11월 대선 표심에도 영향을 주게 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미묘한 '줄타기'를 이어온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동 정책이 또 한차례 결정적인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로이터 통신은 28일 목격자를 인용해 다수의 이스라엘군 탱크가 라파 중심가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라파에서의 대규모 지상전은 한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그어 놓은 '레드라인'이나 다름없었다. 한때 140만 명 이상의 가자지구 피난민들이 대피 중이던 라파에서 민간인 보호 대책 없는 대규모 지상전은 반대한다고 미국 정부는 한동안 분명히 밝혀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8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경우 공격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직접 경고한 바 있다.
그랬던 미국은 최근 라파에 있던 민간인들이 상당수 대피한 것으로 파악되자 라파 지상전에 대한 목소리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다만, '민간인 보호 대책 없는 대규모 라파 지상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철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최근 3주간 약 100만명의 민간인이 라파에서 대피한 것으로 추정하는 가운데, 미국 군사·안보 당국자들 입에서 점점 라파 지상전에 대한 '반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지난 22일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은 한 대담에서 '이스라엘의 라파 군사작전이 안전하고 책임 있게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보고에 따르면 많은 민간인이 라파에서 빠져나왔다"고 답했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라파 민간인 피해를 고려해가며 군사 목표를 달성할 계획에 대해 브리핑 받았다고 소개하며 "우리는 여기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봐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와 계속 긴밀히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라파 문제와 관련한 강경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린 듯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라파 공세의 고삐를 당겼는데, 이스라엘의 26일 라파 난민촌 폭격으로 민간인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친 참사가 발생하면서 미국은 당혹스럽게 됐다.
일단 미국 정부는 이날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이스라엘 정책 변화도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지상전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그것이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 라파 중심부로 진격하는 형태의 '대규모 지상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밝혔다.
그는 또 45명의 라파 민간인 희생은 하마스 지도부 제거 작전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비극이라는 이스라엘의 설명을 소개하면서, 그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과 같은 강경 조치가 불러올 외교 및 국내 정치적 파장을 감안해 일단은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스라엘 측 라파 공세의 속도 조절, 휴전 협상 재점화 등을 모색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중이 읽혔다.
그러나 앞으로 이스라엘의 지상전 본격 전개 과정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늘어날 경우 미국은 더욱 어려운 입장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지지하되, 11월 대선을 앞두고 표출된 지지층 내부의 반발 속에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도 곁들여온 바이든 행정부의 줄타기 행보도 위태로운 형국이다.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계속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은 중요한 선거 자금 공급원인 유대계와, 경합주 승부에 영향을 주는 이슬람계의 표심을 두루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갈 지(之) 자' 행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근래 미국 대학가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퍼지는 동안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만든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했지만 지지층 내부의 이견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대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발과 연결된 '지지 후보 없음' 표가 잦아들지 않고 있는 것이 지지층 내부의 분열을 말해준다.
지난 2월 경선이 치러진, 대표적 대선 경합주인 미시간주, 3월 경선이 실시된 신흥 대선 격전지로 꼽히는 미네소타주에서 '지지후보 없음' 표는 각각 13%와 19%에 달했고, 21일 켄터키주 경선에서도 약 18%에 이르렀다.
라파에서의 민간인 희생에도 대이스라엘 지원 정책을 유지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입장에 대해 지지층 내부의 불만은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선이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휴전과 인질 석방에 더욱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작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권 유지의 거의 유일한 명분인 '하마스 축출'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장기적 휴전에 동의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은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을 키우는 지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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