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18일은 박정희 정권에 충성하던 신군부 전두환 일당이 민주주의 실현을 외치는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날이었다. 하늘이 격노하고 땅이 통곡한 이 날의 군중 학살 만행은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낼 수 없는 비극이었다.
9일 동안 계속된 동족 살상에서 광주시민 166명이 사망하고 2,617명 부상, 179명이 실종되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상무 충정작전'으로 명명한 학살만행에는 제3공수, 제7공수, 제11공수, 제20사단, 제31사단 병력이 동원됐다. 전남 경찰국도 가세했다. 학살만행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국제 인권 감시단'은 그들이 마치 ‘나치 돌격대'와 같았다고 보고했다.
국내외 민주 세력과 지식인들은 먼저 미국 측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데 어떻게 대규모 한국군 병력이 마음대로 광주까지 출동했고 대 민간 작전수행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일부는 신군부의 시위대 학살이 미국 측의 묵인 하에 자행된 것이 아니냐는 억측을 낳기도 했다.
5.18 이전 미 카터 정부와 박정희 정권 사이는 한국 측의 핵실험 시도와 장거리 유도탄 제조 고집으로 매우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 무렵 국내 정세는 박정희의 3선 당선, 유신헌법 선포, 긴급조치 1-9호 발동, 부마사태 발발, 김영삼 의원직 박탈,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 등으로 민심이 매우 흉흉했었다.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호위 그룹인 전두환 등 신군부가 극도로 신경이 예민했던 상황이었다.
광주 민주 시민들의 궐기를 북한 김일성 배후설로 끊임없이 주장하고 나선 지만원 등 극우세력의 ‘광주폭도' 운운은 대법원 판결로 근거 없음이 확인되었고 ‘광주 민주 항쟁' 명칭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의 치명적 과오가 있었다. 신군부 일당을 무마, 안심시키는 등의 필수과정을 간과한 것이다. 박정희 제거로 ‘민주화의 봄'이 온 것으로 착각한 3김은 집권욕에 취해 활동 폭을 넓혀갔다.
5. 18 항쟁 당시 해외동포들의 지원활동은 삼엄한 국내 탄압 상황에서 절대적 비중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광주사태가 외신들에 의해 보도되자마자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의장 김재준, 부의장 김응창, 사무총장 이근팔)는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미 백악관, 상하원과 각 인권단체들에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 만행을 규탄하고 지원을 호소했다.
일본 한민통(의장 배동호, 사무총장 곽동)도 신군부의 만행에 항의 데모를 하고 일본 정계와 인권단체 등 요로에 동참을 호소했다.
한민신보(발행인 정기용)도 LA, 시카고, 뉴욕, 토론토 지사와 함께 긴급 호외를 발행, 배포하는 한편 1면 전면에 ‘전두환 노태우 일당은 광주시민 학살만행을 중단하라’는 내용을 사설로 계속 실었다. 정기용 한민신보 발행인은 “Mr Carter. Do not support ROK Junta"(카터 정부는 한국 신군부를 옹호하지 말라)라는 팻말을 들고 5월 22일부터 8월 12일까지 82일 동안 백악관 앞 단독시위를 하며 미 주요 언론은 물론 로이터, UPI, AP등 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신군부의 광주시민 학살 만행을 고발하고 한국인의 민주주의 열망을 알렸다. (저서 ‘영원한 사랑 대한민국’ 참조) 뉴욕의 해외 한민보(발행인 서정균, 동아일보 해직기자), LA의 신한민보(발행인 김운하, 조선일보 문화부) 등도 열띤 신군부 규탄 활동을 전개했다. 재미 재향 군인회(사령관 최석남, 고세곤 장석윤)의 민주화 운동도 국제적으로 연결망을 구축하고 크게 활약했다.
해외 민주화 운동, 특히 광주민주 항쟁을 지지했던 수많은 동지들과 활동 내용은 얼마든지 있지만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넘긴다.
우리 모두는 광주민주항쟁이 44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분노와 애통과 체념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선배 지도자들의 유훈이 떠오른다. 남아공 백인 정권에 의해 2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석방된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첫 언급은 “다 용서하겠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였다. 김대중도 이 말을 자주 인용했다. 김대중은 당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과 합의하여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던 전두환, 노태우를 석방시켰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박정히 기념관 건립에 수십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제 광주민주항쟁에서 신군부에 의해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는 길은 살아남은 자들이 화해와 평화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희생자들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몰염치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희생자들 영령을 한 번 더 울리는 추태다. 희생자들 영혼을 위로하고 사과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경건하게 옷깃 여미고 희생자들의 영혼 앞에 두 손 모아 기도하자.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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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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