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첩 보류·회수·혐의자 축소’ 쟁점…대통령실 관여 여부도 초점
▶ 열흘새 주요 피의자 3명 조사…이종섭 전 장관도 곧 부를 듯
(서울=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24.3.28
국회에서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외압 의혹' 수사가 반환점을 돌고 있다.
6일(이하 한국시간)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최근 열흘 사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참모인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박경훈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연이어 불러 조사했다.
김 사령관에 대한 추가 조사 가능성이 있지만,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채상병 사건 수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거나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주요 하급자들은 어느 정도 조사가 이뤄진 셈이다.
이에 공수처는 진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신범철 전 차관과 이 전 장관 등 '윗선'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할 전망이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은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숨지자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초동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 조직적인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골자다.
공수처 수사의 쟁점은 ▲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및 법리 검토 지시가 정당했는지 ▲ 경찰에 넘긴 자료 회수가 적법했는지 ▲ 국방부 조사본부가 회수한 기록을 재검토해 혐의자를 대대장 2명으로 줄인 것이 합당한지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특히 이 모든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부당하게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에 핵심적인 부분이다.
◇ 하루 만에 뒤집힌 결재…"부당한 외압" vs "정당한 지시"
첫 쟁점은 이 전 장관이 지난해 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결재한 뒤 하루 만에 뒤집은 것과 관련돼 있다.
해병대 수사단은 결재 당일 오후 국가안보실에 언론 브리핑 자료를 공유했다고 한다.
박 전 단장은 7월 31일 조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취소됐고 이날 이후 유 관리관으로부터 사건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 죄명을 빼라'는 연락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31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VIP(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국방부와 대통령실이 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특정한 보고서가 경찰에 이첩되지 않도록 부당하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이런 의혹을 일절 부인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법리 검토를 위해 결재 이튿날 이첩 보류를 명령한 것이고 이는 정당한 지휘·감독 권한 행사이며, 외부 관여 없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앞서 국회에서 밝혔다.
김 사령관 역시 박 전 단장에게 'VIP 격노'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유 관리관도 장관 참모로서 군사법원법 취지를 설명했을 뿐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 전 차관도 김 사령관에게 "사단장은 빼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 "경찰 이첩 자료 위법 회수 " vs "항명 사건 증거 확보"
해병대 수사단이 지난해 8월 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 기록을 넘기자 당일 오후 국방부 검찰단이 이를 회수한 것도 쟁점이다.
정식으로 이첩된 자료를 영장 없이 위법하게 회수한 것이란 주장과 경찰이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기 전 협의를 거쳐 항명 사건 증거물을 확보한 것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유 관리관은 이런 회수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이후 사건을 재검토하면서 혐의자를 2명으로 축소한 것을 두고는 경찰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 전 장관이 임 전 사단장에 대한 보강 수사를 막는 등 재검토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이 전 장관은 재검토를 넘어 관련자까지 추가로 조사하면 오히려 왜곡 조사, 민간 이첩 원칙 위배 등의 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조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것이라며 '국방부 조사본부의 조사를 막았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란 입장이다.
범죄 혐의가 있는 군 내 사망사고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 있고 경찰은 군의 혐의 유무 판단에 기속되지 않으므로 가이드라인을 준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 9개월째 접어든 수사…특검 도입 논의에 급물살
공수처는 지난해 8∼9월 박 전 단장 측과 민주당 등의 고발 여러 건을 접수했으나, 초반 수사는 더뎠다.
올해 1월에야 유 관리관과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 사령관 사무실, 국방부 검찰단·조사본부 등을 압수수색한 뒤 오랜 기간 자료 분석에 공을 들였다.
공수처는 통신 내역 조회를 통해 이 전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 전 대통령실과 통화한 사실, 회수 당일 유 관리관이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한 사실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앞두고는 이 전 장관의 주호주 대사 발령과 출국금지 해제 논란 속에서 수사가 더디다는 정치권의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공수처 수사는 총선 이후 야권의 특검 논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비로소 속도가 붙었다.
향후 수사의 향방 역시 정치권의 특검 논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및 재표결 결과 등에 따라 특검이 출범할지, 출범하면 언제가 될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인력 등을 꾸리는 데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공수처는 사건을 넘겨주기 직전까지 이 전 장관 등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 측은 아직 공수처로부터 조사 일정과 관련해 연락받은 것은 없지만, 소환한다면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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