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어두울 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고 한다. 요즈음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Mark Miller 교수가 작곡한 “I believe”를 감상하며 가사 내용이 1945년, 독일, 유태인 수용소 지하실 벽에서 발견된 낙서, 어느 무명의 유태인이 죽음을 앞두고 벽에 쓴 글임을 알았다.
I believe in the sun when it’s not shining(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in love even when I don’t feel it(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in God, even when God is silent(나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다). 나는 언제쯤 이런 믿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런지.
우리는, 특별히 나는, 하나님의 침묵에 때때로 못견뎌 한다. 하나님의 침묵을 느끼면서 관계가 차단된, 절망스럽게 버림받은 자처럼 착각 할 때가 있다. 그래도 하나님은 침묵하시지만, 그 분의 돌리시는 역사의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겠지만, 정확히 돌아간다고 믿는다. 지금은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지만, 지나고, 뒤돌아보면 세심하게 하나 하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으리. 고통중에 부르짖는 욥의 기도, 하박국의 기도도 불의한 일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절규이다. 엘리야의 하나님, 아벨의 하나님, 간음한 여인 앞에서의 예수님의 침묵을 묵상해 본다. 오늘도 세상은 불안하고, 죄악이 기승을 부리며, 부조리하고, 참혹한 자연 재해는 가슴을 메이게 한다. 참혹한 전쟁속에 희생되는 어린 아이들, 민간인들, 매일 수만명의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데, 그래도 하나님의 모래 시계는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식처럼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고 통치하지만 마치 달이 해를 가려 해가 안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Martin Buber 는 “하나님의 일식 현상’이라고 불렀다. 봄은 어김없이 추웠던 겨울을 밀어내고 찬란한 봄빛을 내뿜으며 찾아와 우리 집 앞 마당을 온통 화려하게 군림하더니, 어느새 벌써 짙푸른 초 여름이 곁에서 자리 찾음을 하려고 서성거린다. 우리가 겪는 시간적 크로노스와 하나님의 정해진 시간, 카이로스사이에서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먼 훗날 하나님의 인내와 침묵, 인간의 악행을 허용하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역사는 침묵중에 이루어져가는 현재 진행 형이라고 믿는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희한한 일이 생기었다. 내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 그린벨트에 올림픽 사이즈의 큰 수영장이 있다. 며칠 전, 수영장 중앙, lab에서 수영을 하던 중, 마침 맨 가장자리 lab이 비어 있기에 그리로 옮기려고 수영장 위에 올려 놓았던 슬리퍼와 자그마한 백을 물 위로 손을 뻗어, 쥐고, 계속해서 5개의 lap을 옆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는 도중, 아차, 나의 귀마개를 보관하는 아주 자그마한 플라스틱 곽을 잃어버렸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내 것을 잃어버리면 웬지 마음이 편치가 않는데. 요즘 계속해서 내 물건들을 잘 잃어 버린다. 서울에 사는 동생이 나한테 언니 치매 걸렸냐고 걱정을 한다.
암튼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면서, 소외받은 것 같은 우울한 마음과 씨름을 했다. 수영을 다 마치고 물 속에서 마무리 체조를 하려는데, 글쎄, 그 자그마한 귀 마개 곽이 바로 내 눈 앞, 물결에 찰랑 찰랑 흔들거리며 내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큰 수영장에서 거의 한시간 동안 어떻게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지 않고 내게로 다시 찾아와 앞에서 애교스럽게 웃고 있는지. 벌려진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 우연은 없다는데, 이 자그만 일도 무슨 응답인가? 하나님이 침묵 속에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웃으시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침묵의 소리, 그리고 소리를 못내는 약자들의 소리, 오늘도 침묵의 조용한 함성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고싶다.
<
서옥자 한미국가 조찬기도회 이사장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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