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 중년 남성 위기 파고든 트럼프
▶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 사망률↑
▶주요 원인은 자살과 펜타닐 중독
▶제조업 소멸 탓 관련 일자리 줄고 결혼율 떨어지며 소외감 커진 탓
▶트럼프 “당신들의 무능이 아니다”
▶분노한 블루칼라 백인들 표 몰려
▶트럼프 정부 때 되레 불평등 격차
▶백인 중년의 표심 유지될지 주목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중년 백인들이 2016년처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변함없이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비(非)히스패닉계 백인은 2022년 기준 1억9,763만 명에 이르며, 이들 중 40~50대 저학력 남성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핵심 세력으로 손꼽힌다. 이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첫 번째 계기는 2015년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이 발표한 한 편의 논문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지만, 유일하게 미국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만 가파른 수명 감소를 겪고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해당 논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그림>이다. 홀로 상승하는 붉은 선이 미국의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의 사망률을 나타낸다. 진한 파란 선은 같은 나이 대 히스패닉계 사망률이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보건 여건이 개선될수록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독 비히스패닉계 미국 백인들만 기대수명이 줄어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중년의 건강을 해치는 3대 요인 비만과 음주 그리고 흡연이다. 이런 요인이 기대수명 저하에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의 사망 원인을 상세히 살펴보면 자살과 약물 중독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약물 중독 중에선 ‘펜타닐’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펜타닐은 1959년 처음 합성에 성공한 이후,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됐다. 그러나 환자의 의존성이 너무 높다는 게 문제가 돼 1964년 국제연합의 ‘마약에 관한 단일 협약’에 의해 통제물질로 지정됐다. 하지만 중국에서 생산된 원료를 멕시코에서 합성해 수출하는 일종의 국제 분업이 출현하면서 접근성이 높아졌다. 미국의 펜타닐 사망자 수는 2015년 5,000명에서 2017년 2만8,000명, 2022년에는 7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펜타닐 사망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응해 미국 정부는 국경지역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단속 장비를 배치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펜타닐 사망자 수가 크게 감소하는 징후를 찾기 어렵다. 수입 루트가 다양해지고 또 극소량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탁용 소금 10~15알에 해당하는 펜타닐 2㎎만 복용해도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미국 마약단속국에 따르면 밀매업자들은 ㎏단위로 유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50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여기에 펜타닐의 남용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 교수는 비히스패닉계 백인 중년의 위기를 유발한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블루칼라 직종의 소멸이다. 미국 제조업 고용은 2000년부터 2010년 전후까지 500만 명 이상 줄었다. 제조업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다른 직종에서 신속하게 재취업할 수 있었다면 아무런 일이 없었겠지만,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이 정보통신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만들어진 게 문제였다. 해당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수년 이상 추가적인 교육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양보호사, 간병인을 비롯한 헬스케어 부문 일자리는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하기에, 여성들이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을 꿰찼다.
제조업 일자리의 소멸뿐만 아니라, 1970년에 비해 2011년 저소득 남성의 결혼율이 거의 70% 떨어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취업률이 상승하면서 소득 수준이 낮은 남성과 결혼하기보다는 독신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다. 모든 결혼 생활이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통하는 반려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감을 갖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종교 인구가 줄어든 것도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보적인 싱크탱크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2000년 52%에서 2024년에는 80%까지 높아졌다. 예를 들어 미국인의 41%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종교적인 주제를 꺼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 못지않게 중요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던 종교의 약화는 경쟁에서 패배한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들에게 더 큰 충격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왜 미국 비히스패닉계 백인들은 2016년 이후 트럼프에 대한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었을까. 심지어 그가 패배했던 2020년 선거에서도 비히스패닉계 백인의 지지율(55%)은 2016년 54%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트럼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이 제일 큰 요인으로 보인다. ‘당신들이 무능해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 중국산 제품과 이민자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또 실천한 것이 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3%대이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2%까지 인상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중국 상품의 위치를 크게 꺾어 놓았다. 더 나아가 멕시코 방벽 건설 등 다양한 조치를 통해 이민자의 유입을 억제함으로써, 블루칼라 백인들에게 “이 정부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다양한 조치가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의 삶을 개선시킨 징후를 찾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불평등을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기간(2017년 1월 20일~2021년 1월 19일) 동안 상승 추세였다. 지니계수는 얼마나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지 측정한 지표로, 1에 가까워질수록 소수에게 소득이 집중된다는 뜻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1년차에 0.390을 기록했던 미국 지니계수는 이듬해 0.393, 3년차 0.395까지 치솟다가 마지막해 0.377로 소폭 낮아졌다.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높아지던 지니계수가 2022년을 고비로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바이든 정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들의 마음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선거는 아직 많이 남았기에, 이들의 표심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실제 16~18일 메인스트리트리서치 대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4%로 동률을 이뤘다. 올해 초 한때 7%포인트 이상 앞섰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이 주춤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비히스패닉계 중년 백인의 위기’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에, 트럼프 2기를 맞이할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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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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