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찬란한 봄이 밀려와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내가 외로움을 감당 못해 슬픔에 잠기는 것은 인생 역주행이다.
인생은 어차피 외로움이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다. 인기 있는 연예인도, 스포츠맨도, 텔레비전 스크린을 주름잡고 있는 유명 스타들도 제자리로 돌아오면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다정다감한 부부도 돌아누우면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외로움에 젖는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인생의 적나라한 본 모습이다.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6년간이나 가부좌하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의 제 일성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었다.
깨달음(佛性)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이고 타인에게 줄 수도 빼앗길 수도 없는 존귀한 것이다 라는 법호이었다. 그가 드디어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며 중생들에게 제각기 피안을 구하라는 화두를 제시했던 것이다.
예수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창조주의 진리를 완성, 터득하며 마침내 “다 이루었도다”라는 독백을 남겼다. 드디어 성령이 예수 안에 임하였다는 선포였을 것이다. 역시 인간은 제각기 홀로 성령이든, 불성이든 이상향을 추구하기 위해 외롭게 수행하는 피조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수만이 그리스도라고 규정하는 기도보다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 자체가 부처임), 영혼 안에 불성이 들어오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성불하세요”라는 염불에 좀 더 심오함이 다가온다. 확실히 인간은 참됨을 추구하며 외롭게 시류를 타고 흘러가는 존재인가 보다.
공자, 맹자 사상으로 상징되는 동양철학도 ‘달관(達觀)’을 테마로 하는 각 개인의 수양을 강조한다. 바른 마음, 올바른 몸가짐, 이타심(利他心)을 가르친다. 요컨데 다른 사람이 선하고 착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네 자신을 돌보고 잘 하라는 것이다. 선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네 자신을 알라”라는 외침도 같은 맥락이다.
봄은 지금 이 시간에도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새삼스레 선지자들의 경구를 묵상하며 내가 결코 외로운 처지가 아니면서도 사실상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신체적 상황이 빚어내고 있는 속박 때문일까. 순간순간 삶의 허무감이 엄습해 온다.
어디엔가 닿지 못한 아쉬움, 뭔가 확인하지 못한 슬픔, 그리고 상실감이 나를 초라하게 외딴 경지로 들어가게 한다. 물론 신파조의 자질구레한 ‘성취’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이미 결심해 버린 ‘방하착(放下着: Releasing the Attachments)',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그 신념을 자신 있게 확인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며 따라붙는 갈등이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그런 심정이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4계(Four Seasons)' 가운데 ‘봄’ 곡을 반복해서 즐긴다. 작곡가 비발디의 음악을 애청하는 이유는 신부 서품까지 받았던 비발디가 어느 경지인가에 도달해 보려고 영혼을 바쳐 표현한 멜로디가 감동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빈궁 속에 객사한 비발디 작곡 4계 가운데 봄을 감상하며 오늘도 아침을 시작했다. “외롭지 않은 환경이면서 역시 외롭구나.” 무슨 소리인지 가려낼 길이 없는 내면적 갈등이라고나 할까.‘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구나), 옛 선지식들도 그런 심정이었었나. 봄이 목련을 피우고 푸른 잔디로 누리를 치장하고 있건만 시력을 상실한 나로서는 지난날의 찬란했던 봄날 위에는 눈물을 뿌릴 뿐이다.
오늘도 자랑스러운 봄은 내 가슴에 안기지 않아 겨우 내내 읊었던 백석 시인의 낭만 서정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어본다.“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하락)”
봄의 저력이 점점 더 자신만만하게 울려 퍼지는 지금 이 시간 아직도 작아지는 나를 봄이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인지 결론짓기가 두렵다.
프란츠 카프카가 사회 부조리에 한껏 저항하여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하였듯 그 환상에 함께 젖어 외롭게 이 봄날을 가고 있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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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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