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타임스 집중 조명
▶ 한인 대부분 은퇴 연령에 스왑밋 비즈니스도 사양길
사우스 LA 지역에 있는 대형 스왑밋 ‘슬라우슨 수퍼몰’은 LA 폭동 당시 혼란의 중심에 있었던 곳이다. 1985년 문을 연 이 샤핑몰에서 영업 중인 업주 상당수가 한인들이며, 고객 대부분은 흑인들이다. 10일 LA타임스는 ‘한인 상인들은 슬라우슨 스왑밋을 40년 동안 유지해왔지만 그들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졌다’는 제목의 르포기사를 통해 한인 업주들의 명과 암을 조명했다.
중국동포인 김문호(60)씨는 건설 노동자와 전기 기술자로 일하면서 슬라우슨 스왑밋에 5개의 침대가 있는 침술원을 열기 위해 돈을 모았다. 김씨를 비롯해 많은 업주들은 흑인들이 대부분인 고객들을 상대로 1주일 내내 물건을 파는 한인 이민자들이다.
녹색의 거대한 창고같은 외형의 슬라우슨 수퍼몰 건물은 양복과 넥타이, 플랫폼 신발, 가발, 보석으로 장식한 치아를 구입할 수 있는 장소다. 고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과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매니큐어와 문신 서비스를 받으려 가격을 흥정한다.
한인 상인들은 1990년 흑인 고객에게 무례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나 이를 견뎌냈고, 1992년 LA폭동 당시 약탈자들을 막아 냈으며, 코로나19 펜데믹에서도 살아 남았다.
이제 많은 한인 업주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게다가 고객들이 인터넷으로 이동함에 따라 스왑밋 영업도 예전같지 않다.
슬라우슨 수퍼몰에서 가장 크고 가장 바쁜 곳 중 하나인 의류매장을 티모시 정(75)씨가 운영하고 있다. 정씨는 한국에서 대한항공에 가축류를 납품했다. 1983년 미국에 도착한 후 친구를 통해 스왑밋 사업을 시작했다. 정씨는 “공항에 누가 당신을 마중나오느냐,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당신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1988년 슬라우슨 수퍼몰에 200평방피트 규모의 의류 매장을 열었고, 점차적으로 4,000평방피트로 규모가 확장됐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한 명은 약사고 다른 한 명은 생명공학자다. 몇 년 후 정씨가 은퇴하면 자녀들은 그 가게를 인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슬라우슨 수퍼몰은 1985년에 문을 열었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의류와 스낵, 아이스크림, 식료품 등을 판매했다. 1992년 4월29일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을 받자 분노한 사우스 LA 주민들이 업소들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업주들에 따르면 용감한 흑인 경비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18일 동안 스왑밋을 보호했다. 1988년 처음 가게를 연 나씨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는데 경비원들이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요즘 업주들은 시큐리티 비용으로 한 달에 300~500달러를 지불하고, 이외에 400평방피트를 기준으로 약 4,000달러를 추가부담한다. 12명이 넘는 무장 경비원이 통로를 돌아다니며 경비를 선다. 스왑밋에 입장하는 고객들은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가방 검사를 받는다.
한인 업주들은 오랫동안 라티노 직원들을 고용해 왔는데, 일부 직원은 스스로 사장이 됐다. 알마 모레노(45)는 1997년부터 서류미비 이민자 신분으로 정씨의 의류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015년까지 아기 옷을 파는 매장을 열 만큼 충분한 돈을 모았다. 모레노는 현재 가판대 3개를 소유하고 있으며, 딸이 그 중 한 곳을 돕고 있다.
최모(33세)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삼촌이 한국으로 귀국한 뒤 지난해 여름부터 보석으로 치장된 치아를 판매하는 사업을 운영해 왔다. 그는 슬라운슨 스왑밋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 2세다. 최씨는 “사업을 성장시킬 여지가 있다는 생각에 대학을 중퇴했다”고 전했다.
한인 상인들에게 스왑밋의 쇠퇴는 그들의 경력에 대한 우울한 종말을 의미하지만 그곳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적당한 수준의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했다. LA폭동 당시 폭도들을 피해 도망쳤던 신발가게 주인 나씨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스왑밋 영업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를 떠올린다.
몰려드는 고객들로 주차장이 항상 부족해 옆 교회에 주차를 하던 때였다. 그녀는 3개의 매장에서 남성 의류와 신발을 판매하면서 대출금을 갚았으며,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 이제 나씨는 신발가게에서 하루 9시간, 일주일에 7일을 혼자 일한다. “만약 먹고살기 위해 이만큼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한국에 있었을 것 같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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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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