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이완용은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서 10살 때 대원군의 친구였던 권력가인 이 호준의 양자로 들어가 그의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완용은 총명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1882년 과거에 급제했다.
고종은 충직한 이완용을 총애했으며, 세자인 순종의 스승에 임명했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의 외세의 압박과 눈치 속에 있던 고종은 미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영어에 능통한 이완용을 주미 공사로 발탁하여 미국에 파견했다.
미국에서 2년간 체재했던 이완용은 근대화 된 강국인 미국에 매료되어 친미파가 되었다. 조선으로 귀국한 후 고종의 측근이 되어 각종 요직을 역임하며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이완용은 반일을 외쳤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에 고종을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시키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켰다. 이완용은 러시아와 협력하여 조선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또한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고, 외세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이완용이 추진하여 독립문을 창건했다. 이완용은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내분을 일으켜 서로 싸우면 구라파의 폴란드처럼 남의 나라의 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조선인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그의 초심은 애국심으로 불타 있었다.
한편 러시아 공관에 피신한 고종은 러시아의 압박과 심한 간섭을 받았다. 이에 격분한 이완용은 미국 공사를 만나서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의 실속만 챙기는 믿었던 미국 공사는 난감해하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거론하며 이완용의 도움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친미파인 이완용을 견제하던 러시아 공사는 이완용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완용은 내가 아는 한 조선인 중에서 가장 나쁜 인간이다.”
러시아와 미국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찬밥 신세가 된 이완용은 고종과 친러파 대신들에 의해서 내각에서 추방당하고, 정계를 떠나 고향에서 칩거한다. 칩거동안 러일 전쟁이 발발해서 일본이 승리하고, 미국과 일본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임을 선언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체결하고 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착을 강화하는 대형 사건들을 접하고 그의 정치적인 미래를 계획한다.
이완용의 매국노로의 탈바꿈. 이완용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접수한 사실을 가쓰라-테프트의 밀약을 통해 확인한 후 고종의 요청으로 학부대신으로 재 등용된다. 이완용은 고종을 의절하고 나머지 4명을 포섭해서 5명(을사오적)이 고종을 겁박해서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조선의 대외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겨 주었다.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이또 히로부미는 이완용을 각별히 대우해서 내각 총리대신으로 영전시켰다. 이완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정미 7조약을 일본과 맺어 조선의 사법권을 일본에 넘기고, 1910년 8월 16일에는 대한제국 즉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제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완용은 점점 발악적으로 일본 제국을 위해 헌병 경찰제도를 설치하여 일본 경찰보다 더 조선인을 철저히 탄압했다.
고종이 승하하자 3.1 독립운동이 삼천리 전국 방방곡에서 분연히 일어났다. 이완용은 일제의 군과 경찰을 총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와 조선인들을 사살하거나 체포하여 감옥에 구금해서 극악무도한 고문을 가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불구자가 되었다. 3.1 독립 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입은 인명 피해 기록을 살펴보면, 참가한 인원이 106만 여명이었고, 그 중 사망자가 900여 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명이었다.
비록 3.1 독립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되었으며, 일제에 항거한 조선인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알려 미국, 영국 등 세계의 열강들이 조선과 조선인을 높이 평가하고 결기 있는 민족, 총명하고 내일의 희망이 점철하는 국가로 인정받아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일제가 패망하자 대한민국이 해방되어 건국되었다.
오늘 날의 대한민국의 형편을 살펴보면 마치 대한제국의 말기처럼 느껴진다.
한반도 내에서 남, 남 갈등으로 국민들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남북도 서로 원수처럼 역사에서 남과 북의 동족의 존재를 지우려 한다. 대한민국은 미, 일, 중, 러의 이해 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안보와 경제 발전에 먹구름이 씌어져 있다.
3.1절을 맞이하여 매국노 이완용을 반면교사로 삼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3.1 독립운동 정신을 거울로 삼아 대동단결하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총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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